구멍난 양말이 이렇게 매력적이며 통쾌한 적이 있었던가요? 구멍을 통해 보이는 빨간 발톱이 너무도 자극적이고 재미있습니다.
자, 이번엔 구멍난 옷 한번 보십시오. 목 언저리를 보니 프릴을 달아 잔뜩 멋을 부린 듯 합니다만 이 옷도 웬일인지 가슴 언저리에 구멍이 나 있습니다. 여자의 눈초리가 상당히 강하고 매력적이지만 옷에 난 구멍만큼은 아니지 않습니까? 두 광고 모두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구멍입니다. 도대체 뭘 전하려고 옷에다, 양말에다 구멍을 뚫었을까?
눈치 빠른 분들은 그 구멍이 바로 옆에 있는 제품의 구멍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셨겠지요?
네, 맞습니다. 이 광고는 구멍이 있는 새로운 병의 에비앙이 시판되었음을 알리는 광고입니다. 깨끗함을 생명으로 아는 에비앙을 구멍난 양말이며 구멍난 옷에 비유하다니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 같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버젓이 광고를 했네요. 그것도 아주 감각적이고 삶의 여유가 뚝뚝 묻어나게 말입니다. 참 쉽습니다. 참 심플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또한 참 강력합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광고 할 수 있었을까요?
더럽다, 냄새난다, 고급스럽지 않다, 부정적이다 등등 수많은 이유를 들어 나오자마자 그냥 죽여버렸을 아이디어입니다.
우리나라 광고표현도 참 많이 다양해지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넘기 어려운 벽이 바로 부정적인 접근방법(negative approach)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정적인 어프로치를 좋아하는 광고주는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나 제품의 이미지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한두 사람이 “부정적이지 않나요”라고 지적을 하면 십중팔구 그 아이디어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맙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획일적이고 유연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라고 저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해봅니다.
우리도 이제 슬슬 부정적인 접근방법의 벽을 넘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현화 오리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