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기부하고 또 줍시다”…한국기업인 실적저조

  • 입력 2002년 2월 27일 18시 00분


1953년 미국의 재봉틀 회사인 AP스미스사는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프린스턴대에 기부금을 냈다. 그런데 스미스사의 한 주주가 “회사의 기부금 납부는 주식회사의 기본 설립취지인 이익추구와 주주가치의 증대에 어긋난다”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국 뉴저지 고등법원은 “기업은 좋은 시민성을 가질 의무를 지니고 있어 기부행위가 직접적으로 기업 이익에 연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대부분의 선진국 기업들도 이 취지를 받아들였다.

최근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스톡옵션(자사주 매입권)을 행사해서 돈을 벌면 이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행장은 “금융·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희생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취지를 밝혀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외국에서는 기업과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이 매우 중시돼 기업활동에서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미국은 개인, 한국은 기업이 기부〓미국에서는 기업보다 개인의 기부가 주류를 이룬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CNN 등 대기업 회장들은 매년 수천억원을 자신의 이름을 딴 공익재단이나 대학 의료 및 예술단체 등에 낸다. 기부 종류도 주식 부동산 현금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반면 국내에서는 그룹 총수가 개인재산을 헌납하는 일은 별로 없고 대부분 그룹 계열사가 기업재단에 출연하거나 자체 봉사활동을 통해 기부한다. 기업의 사회봉사활동은 90년 이후부터 점차 활발해져 기업재단이 문화예술 사회복지 학술 교육진흥 등의 분야에 사용한 총사업비는 95년 4115억원에서 99년말 1조7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상이익의 1% 이상을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는 ‘1% 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삼성 LG SK 포철 등 119개 기업이 가입했다.

전경련 박종규 사회공헌팀장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기업과 기업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개인보다는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이 많았다”며 “외국에서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으면 사회기부나 환경 등에 관심을 갖게 돼 앞으로 기업인의 사회공헌 활동도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부실적, 왜 저조한가〓한국에서는 개인이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상속문화에 아직 익숙해 있다. 개인이 장학재단을 만드는 데도 까다로운 규정이 많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기업인들이 선진국 기업인보다 덜 선량해서 덜 기부한다기보다 기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된 측면이 많다.

기업은 선진국의 오래 된 우량기업에 비해 대체로 기부할 재원이 충분치 않은 편이다. 또 선진국 기업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준조세 부담이 커 사회사업 등에 돈을 쓰기가 부담스럽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한 곳에 기부금을 내면 다른 곳에서 ‘왜 우리는 주지 않느냐’며 항의하고 집에 찾아오는 일도 있어 드러내놓고 기부금을 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봉사를 마케팅과 연계〓한국에서는 기부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않지만 기업이 마케팅과 이미지개선 차원에서 벌이는 사회봉사활동은 많이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작은 사랑 큰 나눔 운동’을 펼쳐 95∼97년 5개 가전제품 총매출액의 1%(약 250억원)를 사회단체에 지원했고 98년부터는 연간 5억원의 복지기금을 내고 있다.

제일은행은 최근 임직원이 급여에서 월 5000원∼5만원을 공제하면 은행도 똑같은 금액을 내는 방식(Matching Fund)으로 2억7600만원을 모아 사공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LG정유는 소비자가 내는 주유 금액의 일정액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봉사활동이 오래 전부터 활성화돼 있다. 미국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공익단체와 제휴를 하고 카드사용액의 일정금액을 기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한림대 사회학과 한준 교수는 “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 등 사회적 자산이 매우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2001년 미국의 상위 7대 기부 현황
순위기부자기부 금액기부 대상
1고든 무어 부부(인텔 창립자)61억3000만달러(약 7조9690억원)고든재단,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
2빌 게이츠 부부(마이크로소프트 회장)20억달러(약 2조6000억원)빌&멜린다재단
3제임스 스토워즈(뮤추얼펀드 아메리칸 센추리 창립자)11억2000만달러(약 1조4560억원)스토워즈 의학연구소
4존 홀링워즈(섬유기계제조업자·2000년 사망)4억달러(약 5200억원)대학 YMCA 등
5엘리 브로드(건설회사 회장)3억8789만달러(약 5042억원)브로드재단 초중등학교
6테드 터너(CNN 창립자·AOL-타임 워너 부회장)3억3053만달러(약 4297억원)유엔재단 핵위험센터
7시드니 키멜(존스 어패럴그룹 회장)2억6050만달러(약 3386억원)예술 및 교육단체, 병원, 박물관, 도서관
원화환산은 달러당 1300원 기준. 자료:www.philanthrop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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