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A&D]"치고 빠져라" 7개월만에 10배 차익

  • 입력 2001년 3월 27일 18시 33분


외환위기로 인해 화의상태에 빠져있던 문구팬시전문업체 바른손은 2000년 6월 미래랩이라는 새 주인을 만났다. 지분 73.6%(785만8000주·액면가 500원 기준·이하 같음)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것. 미국 경영학석사(MBA) 출신들이 만든 미래랩은 벤처 인큐베이팅을 사업영역으로 내세운 창업투자회사.

미래랩은 바른손을 인수하자마자 감자 및 채무재조정을 단행하고 신규자금을 수혈한 후 캐릭터 중심의 인터넷사업을 펼치겠다는 인수개발(A&D)계획을 펼쳤다. 이 때 바른손은 ‘제2의 리타워텍’으로 불리며 주가는 24일 연속 상한가로 2만8850원까지 뛰어올랐다.

미래랩은 폭등하기 시작한 주가를 활용해 와와컴 중앙정보기술 등 인터넷벤처기업을 ‘주식 맞교환’방식으로 인수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주가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9월18일부터 주식을 주당 1만원 이상에 팔기 시작했다. 10월 액면분할(5000원→500원)을 실시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100만주 이상 팔았고 올 2월 마지막으로 30만주를 팔고 완전히 손을 털었다.

미래랩은 매입단가는 액면가 5000원 기준으로 7636원이었고 14만원 11만원 9만원 7만원 수준에서 정리해 약 7개월 만에 10배가 훨씬 넘는 시세차익을 챙겼다.

그러나 이 과정이 끝나자 주가는 10분의 1인 2000원 수준으로 추락, 남은 개인투자자들만 허탈해 하고 있다.

9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인터넷 관련사업추진은 현재 중단된 상태. A(인수)만 있고 D(개발)는 지지부진한 채 대주주가 주가차익만 챙긴 셈. 바른손의 3분기(2000년 4∼12월) 영업이익은 28억원 적자로 99년 4월∼2000년 3월 25억원에 비해 더 나빠졌다. 미래랩이 홀연 철수한 이유에 대해 바른손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미래랩과 홍콩 주주들과의 갈등 때문”이라고만 설명했다.

한편 미래랩은 작년 6월 바른손이 발행한 해외전환사채(CB)를 인수하자마자 코리아인핸스드(44만6992주), 로터스아시아(22만2408주) 등 2개 역외펀드에 넘겼다. 미래랩은 같은 달 코르베타, 밸류이슈어스 등 2개 펀드에 각각 보통주 15만1475주(주당 8419원)를 팔았다. 이중 로터스펀드는 케이만군도, 나머지 3개는 말레이시아 등 조세회피지역에 설립된 종이회사(페이퍼 컴퍼니)다. 어쨌든 이 거래로 ‘바른손 외자유치설’이 나돌면서 24일간의 상한가 행진의 에너지를 공급했다.

문제는 실질소유주가 불투명한 이들 해외대주주가 작년 7월부터 국내시장에서 주식을 100주, 200주 등 소규모 단위로 수시로 사고 팔았다는 것. 회사의 대주주가 주식을 소규모로 사고 파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4개 해외 펀드와 일부 바른손 자회사가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가 포착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4개 해외펀드와 미래랩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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