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3개사 현주소]시장 불안 여전… 회생까진 아직 '險路'

  • 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39분


《정부가 또다시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투신 등 3개 문제 기업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2월말까지 4대 부문 개혁을 완료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처리방식은 지난해와 달리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현대를 살려놓고 시간을 번 뒤 구조조정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덕분에 시장에서 현대 문제는 조금씩 수면 아래로 수그러들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과도한 부채비율과 낮은 수익성 등 3개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3개사의 현 주소와 정부정책의 허실을 짚어본다.》

▼ 현대건설 ▼

현대건설은 올 들어 외환 한빛 신한 주택은행에 모두 4600억원의 신규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해 10월 결제해 준 진성어음의 만기가 도래했으나 가용현금이 없는 자금흐름상의 미스매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통상 건설업체들이 1·4분기에 자금수요가 몰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채권단이 모두 2조5700억원에 이르는 차입금과 회사채의 만기연장으로 부담을 덜어준 상황에서 또 손을 벌린다는 것에 고개가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1일 현대건설의 해외공사에 대한 지급보증까지 결정하면서 현대건설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현대건설이 생존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느냐는 점이다.

외환은행 현대팀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지난해말 4조5000억원의 부채를 올해말까지 3조5000억원으로 줄여야 이자보상배율이 1.5배 정도로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연초 이를 위해 7485억원의 자구계획안과 268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계동사옥 매각 2000억원과 서산농장부지 매각 잔여분 2500억원 등 기껏해야 5000억원 정도의 자구안 정도가 현실성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경기 회복세가 늦어질 경우 영업이익 목표도 장담할 수 없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출자전환으로 부채규모를 줄여주는 방법밖에 없으며 정부로서는 언제 이 카드를 사용할지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전자 ▼

현대전자는 한때 부도설까지 돌았던 유동성 위기가 일단 어느 정도 진화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 3월까지 만기 도래하는 1조2000억원의 회사채에 대해 산업은행이 80%를 인수해주기로 했고 채권은행이 수출환어음 한도를 6억달러 늘려주기로 했기 때문.

대우증권의 정창원 애널리스트는 “산업은행이 회사채 인수를 계속 해준다면 올해 현대전자는 80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만 내도 현금흐름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며 “문제는 자금사정보다 현대전자가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업체로 남을 것이냐이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전자는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의 2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를 따라잡기 위해 기술개발 투자와 신규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채감축에 여유자금을 쓸 수밖에 없어 반도체 업체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의 오이겐 뢰플러 사장은 “현대전자 문제는 특정산업의 과잉생산과 과도한 부채비율, 낮은 수익성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문제해결이 연장된 기간에 철저한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수익성을 높이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현대투신 ▼

현대투신증권은 증권가에서는 ‘핵폭탄’으로 불린다. 현대투신의 경영정상화 여부가 아직 미지수이며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투신의 자기자본(총자산―총부채)은 작년 9월말 현재 마이너스 1조2727억원. 여기에는 회사가 고객이 맡긴 신탁계정에서 빌린 연계 콜 3조1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현대투신은 이 규모를 2월말까지 1조6000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회사측은 1조4000억원이 필요한데 현재 현대계열사가 담보로 제공한 현대정보기술 현대택배 현대오토넷 주식을 2400억원으로 평가해 증자대금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객들은 돈을 계속 찾아가고 있어 현대투신운용의 수탁고는 작년말 17조6606억원에서 30일 현재 17조1621억원으로 4985억원 줄었다.

따라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는 나머지 1조1600억원을 갚을 수 없어 미국 AIG에 팔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AIG는 자신들이 1조1000억원을 출자하고 나머지 부실을 정부가 증자형태로 메워 정상화시킨다는 내용의 투자제안서를 제출한 상태.

AIG는 공동출자 조건으로 △증권금융채권 만기 5년 연장 및 금리 3.5%포인트 인하(6.5→3%) △현대투신이 발행한 후순위채권(CBO)펀드에 대한 지급보증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 제일은행을 AIG가 제안한 방식대로 서둘러 팔면서 엄청난 손해를 본 일이 있는만큼 AIG 요구조건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협상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박현진·김두영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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