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판정보류 배경]현대에 마지막 기회 부여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58분


채권단이 현대건설을 어떻게 처리할지 윤곽이 드러났다.

현대건설에 회생할 기회를 주되 삐끗하면 날리겠다는 것이다.

채권금융기관의 만기연장조치는 현대가 그토록 요구한 “자구할 시간을 달라”는 점을 현실을 감안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대신 현대는 자체 자금으로 물품대금과 해외채권 상환액과 사업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일각에서 채권단의 만기연장조치를 사실상의 ‘부도유예협약’으로 현대처리를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차입이 필수적인 건설업의 특성상 현대건설은 이번 조치를 “칼끝이 거의 목 밑까지 다가온 기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금융권은 현대건설의 만기연장 여부를 7∼8일경 전체 채권단회의를 열어 결정한다. 제2금융권의 만기연장 동의를 받아내고 구체적인 만기연장 일시와 방법을 이 자리에서 논의한다.

외환은행 현대반의 강경문 차장은 “현대건설의 자구계획 제출 여부에 관계없이 연말까지 만기연장 동의를 끌어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금융기관은 현대건설의 자구 ‘계획’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더 이상 계획을 제출받는 것도 지쳤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

대신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을 테니 주식을 팔거나 서산농장을 판 돈으로 물품대금과 해외차입금을 막으라는 것이다. 자체 자금으로 막지 못하면 곧바로 최종부도 처리다.

현대건설 측은 “6일 돌아올 신주인수권부사채(BW) 8000만달러는 막을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외환은행 이연수(李沿洙)부행장이 “건설업 특성상 자금줄을 끊으면 자구노력 없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이근영(李槿榮)금감위원장이 “사실상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의식한 발언이다.

문제는 퇴출기업의 핵심사안인 현대건설의 이번 결정을 시장이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점.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채권단이 현대건설의 자구노력을 강제할 어떤 장치도 없이 시장의 가장 큰 불씨인 현대건설 문제를 그냥 방치해두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현대건설의 영업이익으로 볼 때 물품대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 또 부도유예 결정 이후 제2금융권이 어음을 돌리더라도 부도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극단적으로 현대건설은 자구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고도 연말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될 경우 현대건설이 연말까지 1조5000억원의 부채를 줄인다는 계획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는 금융시장의 부담으로 남아있을 가능성도 높다.

<이병기·박현진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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