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제일은행의 '혈세잔치'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1분


3,500,000,000,000원.

헤아리기도 어려운 거액의 돈이다. 우리 정부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 측에 추가로 주기로 한 금액이다. 부실덩어리가 된 제일은행을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정부가 투입한 돈이 무려 12조원대. 우리 정부의 한해 예산이 100조원을 채 넘지 않으니까 예산의 10%가 넘는 뭉칫돈이 일개 금융기관에 투입된 셈이다. 그나마 외국 금융기관에 팔려 걱정을 덜었는가 했더니 또 다시 돈을 쏟아 붓게 되었으니 안타깝다.

억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계약서에 그렇게 하도록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1999년 제일은행을 매각하면서 향후 2년간 발생하는 부실 여신은 모두 되사주기로 약속했다. 그 때 정부의 주식지분 51%를 넘겨준 대가로 받은 돈은 5000억원. 금융계에서 “뉴 브리지는 땅 짚고 헤엄치는 손쉬운 장사를 하게 됐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고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졌다.

문제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약서에 따르면 내년 말과 2002년 말 두 차례 더 부실여신에 대한 분류작업이 실시된다. 제일은행 측의 판단 여하에 따라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사태가 또 다시 생길 수 있다. 앞으로도 수조원을 더 주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민간연구소의 조사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제일은행의 새 경영진은 여신관리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행여 ‘부실여신이 생기면 한국 정부가 책임질 것’이라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 일 처리를 대충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예금보험공사가 요구액을 지급하기에 앞서 제일은행의 여신분류를 점검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이다.

제일은행의 사례는 국내 기업을 해외에 팔 때 매각조건이나 방법 등과 관련해 정교한 전략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교훈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대가는 실로 비쌌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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