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로비파문]與K후보에 1억전달 전말

  • 입력 2000년 6월 8일 03시 29분


동아건설 경영진들이 민주당 소속 ‘4·13’ 총선 출마자 K후보에게 선거자금을 전달한 과정은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돈 전달에 관여한 사람이 극소수인데다 전달방법은 물론 전달시간까지 사전계획 아래 치밀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건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거자금 전달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사람은 모두 5명 선이라는 것. 이 중 사전에 ‘작전’의 전모를 알고 있던 사람은 고병우(高炳佑)회장을 제외하면 한 명뿐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 다음은 이들이 전하는 자금전달 과정.

▼신권으로만 준비▼

고회장이 자금담당 간부를 불러 1억원을 현찰로 준비하라고 지시한 때는 3월31일. 고회장이 돈을 어디에 쓰려는지 눈치챈 이 간부는 사무실 직원 몰래 신권으로만 1억원을 준비했다. 이어 100만원씩 묶은 돈다발을 10개씩 포개 선물용 포장지로 싼 뒤 종이 쇼핑백에 담았다. 마치 선물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고회장의 지시를 받은 회사 고위 임원을 태우고 K후보의 자택에 다녀온 승용차 운전사조차 이 쇼핑백을 받아 실으면서도 내용물이 뭔지 눈치채지 못했다. 운전사는 “당시 진짜 선물이 든 쇼핑백이라고 생각했으며 예상보다 무거워 양주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회장은 이날 오후 6시경 ‘전달역할’을 할 고위 임원에게 “돈을 준비했으니 K후보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하면서 자금담당 간부를 통해 이 현금이 든 쇼핑백을 고위 임원사무실로 보냈다. ‘쇼핑백’은 곧바로 이 임원의 승용차 트렁크에 실렸고, 이어 승용차 운전사에게 K후보의 휴대전화 및 집전화 번호와 집주소도 전달됐다.

당시 돈 전달에 관련됐던 한 간부는 “쇼핑백은 대략 가로 30cm, 세로 10cm, 높이 50cm의 크기로 쇼핑백 속의 1000만원짜리 다발은 검은 바탕에 빨간 장미가 새겨진 포장지로 싸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돈을 K후보에게 전달하는 시간은 오전 6∼7시로 결정됐다. K후보가 밤 늦게까지 선거운동을 해 이른 아침이 아니면 만나기도 어려웠던데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간대였기 때문.

▼高회장이 전달과정 카폰 확인▼

다음날인 4월1일 오전 6시반경 고회장의 심부름을 맡은 고위 임원은 쇼핑백을 승용차에 실은 채 운전사를 재촉해 K후보 집으로 향했다. 이 간부의 차가 K후보 자택으로 향하던 도중 카폰이 울렸다.

고회장이 회사 직원을 시켜 돈 심부름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현재 돈을 전달하러 가는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고회장은 전달 뒤 반드시 확인전화를 해달라고 직원을 통해 지시했다. 오전 7시10분경 ‘돈 다발’은 은밀히 K후보에게 전달됐다.

“선물 전달 완료.” 오전 7시20분경 고회장 자택으로 로비자금이 성공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전달됐음을 알리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K후보 "받은사실 없다"▼

고회장의 심부름을 맡았던 회사 고위 임원은 “나는 K후보를 잘 알지 못하고 돈을 전달하지도 않았다”며 돈 전달 사실을 부인했다. 또 K후보도 “나는 고회장은 알지만 돈을 전달했다는 회사 고위간부는 알지 못한다”며 “고회장이 선거를 전후해 나에게 돈을 보낸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돈을 전달했던 고위 임원은 그 무렵 다른 임원에게 “고회장이 K후보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준 이유가 뭘까”라고 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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