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生 감자명령 부당판결 의미]금감위 '일방통행' 첫 제동

  • 입력 1999년 8월 31일 19시 42분


법원이 31일 대한생명에 대한 금융감독위원회 처분의 부당성을 제기한 최순영(崔淳永)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은 ‘적법절차 없는 행정행위는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담당재판부는 판시를 통해 “아무리 목적과 능률이 중요해도 행정행위가 법치주의의 두 기둥인 ‘실체적 적법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경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바꿔 말하면 대생에 대한 금감위의 구조조정 조치가 적법 절차를 무시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무리하게 추진됐다는 의미다. 이번 판결은 동시에 국민부담인 공적자금 투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관료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구조조정에 의해 퇴출되거나 불이익을 당한 금융기관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게 됐다.

이번 판단을 쟁점별로 보면 우선 재판부는 금감위가 행정절차법상 처분에 앞서 이뤄져야 하는 사전통지 내지 의견청취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잘못을 범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위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개법)상 행정처분은 사전 의견제출 기회 부여와 같은 행정절차법상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금감위 주장은 헌법 내지 법률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이번 처분이 법률상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기회 부여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맞선 금감위의 논리에 대해서도 “사전통지를 못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비상 상황이라거나 공공복리를 위해 긴급히 처분할 만한 사정이나 처분의 성질상 의견청취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다”며 못을 박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금감위가 이사회에 대해 자본금감소 결의를 명령한 처분과 관련해 “이사회는 주식회사의 기관에 불과해 법률상 권리 의무의 주체가 아닌 만큼 행정처분의 상대방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더 나아가 “금감위는 직접 이사회에 대해 감자결의를 명할 수 있는 명백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즉, 금개법(12조4항)은 ‘정부 등이 부실금융기관에 자본금감소를 명한 경우 금융기관은 자본감소의 원칙인 주총의 특별결의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결의로 자본감소를 결의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는 만큼 금감위가 이사회에 직접 감자결의를 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이에따라 금개법의 일부 조항도 개정해야 하는 등 절차보완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흠을 모두 합해도 이번 처분을 무효로 이끌 지경에 이르지는 않으며 단지 취소대상으로 만들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혀 다시 적법 절차를 밟을 경우 금감위 처분의 효력이 적법성을 얻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대생구조조정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정부는 큰 상처를 입었다. 공개입찰에 앞서 대생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은 절차상의 하자와 주식소각은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최순영회장측 항변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 것이 화를 자초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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