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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26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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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계와 민간경제계는 정부의 이같은 낙관론에 우려를 표명한다. 정부가 재벌의 과다한 부채,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등 핵심적 현안은 해결하지 못한 채 금리 환율 어음부도율의 하락, 제조업가동률 소폭 상승 등 몇가지 지표만 보고 지나치게 낙관론을 편다는 것. 정부쪽에서는 강수석, 학계에서는 재벌해체론 등 선명한 입장을 강도 높게 펴고 있는 정운찬(鄭雲燦)서울대교수로부터 각각 우리 경제의 현실진단과 진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임규진기자〉mhjh22@donga.com
[강봉균수석]
▼경제진단〓최근들어 대규모 경상수지흑자와 환율 금리의 안정으로 시장기능이 정상화되고 있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소장도 지난달 한국경제가 다른 위기국가들과 차별성을 보이며 정상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 경제는 신용경색이 해소되고 엔화 강세에 따른 수출증가가 이뤄지면서 내년 2·4분기(4∼6월)부터 플러스성장으로 전환될 것이다. 내년 연간 성장률은 2∼3%를 기록하고 2000년에는 4∼5%까지 올라갈 것이다.
국내 금리는 연말까지 2%포인트 정도 추가로 하락할 것이다. 미국정부가 잇따라 금리를 인하하는 등 대외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의 앞길에는 재벌구조조정 등 많은 복병이 숨어 있지만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은데 그저 비관만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현 시점에선 한국경제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정책대응〓은행부실은 64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3개월 이상 연체된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가 올 6월말 현재 71조원으로 줄었다.
5대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건실하고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변화할 때까지 강력한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 이는 다른 재벌 및 중소기업과의 형평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5대그룹이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외자유치다. 외자유치 실적이 올들어 9월까지는 46억달러로 부진했지만 10월 중 외국인투자가 10억달러에 달했고 상담중인 금액이 20억∼30억달러여서 전망이 밝다.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낮춘 재벌들은 은행을 소유할 수도 있다. 다만 재벌들이 2∼3년 안에 부채비율을 거기까지 낮추긴 어려울 것이므로 당장 재벌의 은행소유가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정운찬교수]
▼경제진단〓우리 경제를 비관하는 이유는 2백조원에 이르는 기업들의 은행빚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이 밝힌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규모는 각각 1백90조원과 2백조원에 이른다. 금융감독위원회도 1백20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제 다시 위기가 닥칠지 알 수 없다.
외국기관들이 한국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생각보다 잘 한다’는 의미이지 ‘경제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강수석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버그스텐소장의 말을 인용한 상황인식은 현실과 큰 차이가 있다. 외국사람들의 평가만 믿고 우리 경제를 낙관해선 안된다.
▼정책대응〓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국채를 더 발행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늘려야 한다. 한은이 국채를 인수하면 인플레가 나타날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지금은 인플레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재벌개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경제정의나 형평성 차원뿐만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재벌체제는 존립근거를 잃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재벌개혁의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내년 7월부터는 정치의 계절이 와서 정부가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힘든 상황이 되므로 기업 금융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재벌의 은행소유 허용은 위험하다. 세계적으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에 들어간 사례는 없다. 이미 재벌이 금융산업을 상당히 지배하고 있지만 은행만이라도 지켜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엔 시장이 없었는데 정부가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