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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0월 23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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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리처드 닉슨대통령 이후에야 국세청(IRS)의 정치적 중립이 확립됐다. 미국 IRS가 굴절됐던 역사는 국세청 개혁과 관련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적을 치는 세무조사〓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은 1933년 취임하자마자 ‘손볼 사람’ 명단을 작성했다. IRS에 맨 먼저 공화당의 자금줄이었던 앤디 멜론 전재무장관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시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로 엘리노어 루스벨트여사는 ‘자세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메모와 함께 루스벨트정부에 비판적인 한 언론사의 탈세 정보를 IRS청장에게 건네줬다.
존 F 케네디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61년 취임 직후 공화당 행정부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셔먼 애덤스에 대해 조사하라고 IRS에 지시했다. 공화당이 선처를 호소하자 못이기는 척 조사를 중단시켰지만 이 일을 계기로 공화당이 한결 고분고분해졌다.
닉슨대통령은 70년 앨라배마 주지사로 출마한 조지 월리스가 장차 72년 대선에서 위협적인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닉슨은 월리스를 견제하는 데 IRS 자료를 활용했다. 그는 IRS로부터 월리스에 대한 세무조사 자료를 넘겨받아 언론에 흘렸다.
닉슨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IRS를 많이 악용했지만 역설적으로 IRS가 정치적 중립의 전통을 세우는 계기를 제공했다. 하원 법사위원회가 워터게이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닉슨의 전횡이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권력이 IRS를 장악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 결과로 76년 IRS업무규정 6103조가 제정돼 대통령의 IRS에 대한 납세자료 열람요구권이 제한됐다. 대통령이 납세자료를 열람하려면 자필서명한 요청서를 제출하도록 제도가 바뀐 것.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이 조항을 비교적 충실히 지켰다.
▼시급한 내부 정화〓권력으로부터의 중립도 중요하지만 국세청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자체 정화가 강도높게 이뤄져야 한다.
선진국 세무공무원은 납세자와 짜고 세금을 잘라먹지 않는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영국 국세청 감사관실에서 비위를 적발한 실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세무공무원 9만명 가운데 연간 비위로 징계받은 사람은 단 몇명에 불과했다.
세무공무원이 본분을 충실히 지키고 성실납세풍토가 확립되면 국세청이 정치적인 압력을 받더라도 부당하게 정치자금을 모으기 어렵다.
선진국 국세청은 과학적이고 철저한 세원관리를 통해 탈세의 여지를 없앤다. 그래서 정치적인 게임에 휘말릴 수 없다.
현진권(玄鎭權)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에서는 거래가 주로 신용카드와 수표로 이뤄져 내용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탈세가 어렵기도 하지만 세무행정도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성실하게 세금을 내지 않고는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라는 것.
외국 국세청은 세무조사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조사를 벌일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세무조사에 들어가겠다’는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
IRS는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할 때 무작위 추출법을 활용한다. 무작위 추출에서 일단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되면 벗어날 수 없다. 특별세무조사는 탈세가 명백한 경우로 한정된다.
〈백우진기자〉wo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