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명석/취업난 시대의 직업훈련

  • 입력 1998년 8월 20일 19시 37분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할 때 대학 교단에 서 있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없다. 학기마다 듣던 유능한 졸업 예정자 모집 소식은 아예 끊겨 버렸고 지난 학기에 어렵게 입사가 내정됐던 몇몇 학생들도 기업 사정이 악화되자 최종 합격통보를 받지 못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친지들에게 제자들의 취업을 구걸해 봐도 전반적으로 기업 사정이 어려우니 부탁이 먹혀들 리 없다.

경기침체 심화와 금융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해 현재 실업자 수가 1백50만명에 달했고 금년말까지는 2백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라 한다. 금년도 대학 졸업생들과 앞으로 매년 각 대학에서 쏟아져나올 졸업생들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더 올라갈 것이다.

실업대책은 일시적인 처방보다는 가급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실업수당이나 취로사업보다는 건실한 기업을 지원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실직자들의 학력이나 적성을 고려해 국제경쟁력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평생 사회교육을 통해 육체노동자나 데이터노동자들을 정신노동자로 재교육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요즘 농촌에서는 별다른 기술을 요하지 않는 막노동력도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나온 노숙자들도 땀흘려 일함으로써 생활 리듬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 자체에서 얻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서 이 경제난국을 벗어난다든지 선진국 대열에 끼겠다는 망상은 버려야 한다.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이나 투쟁에만 열을 올리고 노동의 즐거움을 그 질(質)의 향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직장을 잃고도 실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빠르게 변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요즘처럼 취직난이 극심한 상황에도 재취업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전자 상거래, 네트워크 장비 등 전문가 양성에 필요한 과목을 공부해 각종 기술전문가 자격증(PC)을 취득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해외기업이나 국내진출 외국계 기업에서는 국제 컴퓨터 전문가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우선 채용해 우대 혜택을 주고 있다.

기술 전문가 자격증 취득 못지 않게 외국어, 특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최신 정보와 지식을 얻는 수단인 인터넷도 그 전달 매체가 영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 자유무역시장에서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언어뿐만 아니라 사업 경영 기술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변화된 유능한 전문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부와 대학은 있는 시설을 총가동해 적절한 재정지원과 함께 치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 있는 여러 외국 기업이 나름대로 많은 사람을 채용할 계획을 짜놓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한결같이 언어능력은 물론 회사 전시회 소개, 네고(협상), 전화, 마케팅전략 등 국제적으로 제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사업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지원자는 많지만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라고 한다.

또한 국제 업무를 할 때는 간단한 일에서도 문화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기업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은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나 대학들은 외국기업 취업 희망자들을 위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가령 현지 직원 연수를 할 때도 의자배열 질문 토론과정 등을 놓고도 문화권마다 적지 않은 마찰이 생긴다. 평등을 중시하는 미국 사람들은 누구나 앉고 싶은 의자에 앉지만 연령이나 서열 신분을 중요시하는 아랍 사람들은 연장자나 서열이 높은 회사 중역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고 일반 직원들과 섞여 앉지 않는다. 집단 화합을 중히 여기는 일본 사람들은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특별히 지정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리 배정된 자리에 따라 앉는다.

새로운 지식정보 사회는 필연적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박식한 세계 시민과 소비자를 양산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제2의 건국’의 이상을 ‘창조적 지식 국가 건설’이라고 천명했다. 이 ‘창조적 지식 국가 건설’의 성공 여부는 기술 전문가와 언어 문화적으로 다변화한 유능한 지식 근로자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정부와 기업이 인력 양성이나 연구 개발 투자에 소홀하거나 인색하다면 IMF체제 극복이나 제2건국은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박명석<단국대 교수·문화간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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