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5개銀 인수상황]당국,전산망 복구 안간힘

  • 입력 1998년 6월 30일 20시 01분


당국은 당초 은행이 퇴출되더라도 고객 입출금이나 어음 수표결제가 전혀 지장받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퇴출은행 발표 이틀째인 30일에도 금융시장 일각이 마비된 상태가 이어졌다.

당국의 호언을 믿었던 고객들은 현금인출 불능, 세금체납, 신용카드 사용정지, 수표결제 중단으로 큰 불편을 겪었으며 퇴출은행의 주거래 기업과 거래하는 일부 중소업체들은 부도위기에 몰렸다.

인수은행측은 최소한 2,3일이 지나야 일부거래가 가능하고 완전 정상화에는 이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객피해 확산〓경기은행과 거래해온 경인지역 3만2천여 중소기업들이 만기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29일 하루동안 인천지역에서 접수된 결제어음이 1천억원을 웃도는 6만여장에 이르며 이들 어음이 결제되지 않아 돈줄이 막힌 기업체들이 부도직전에 내몰리고 있는 상태.

18년째 경기은행과 거래해오던 인천 남동구 고잔동 B공업사는 1천만원짜리 당좌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급전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인천 남구 도화동 S기계 김모사장(48)은 “어음결제가 이뤄지지 않아 2,3일을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동남은행이 주거래 은행인 부산 사하구 신평동 신발제조업체인 H사 등 수출업체들은 27일부터 수출신용장 할인을 받지 못하거나 신용장 개설 중단으로 수출업무 중단 및 계약파기 위기에 몰렸다.

부산 북구 삼락동 G사는 기업자금 2억원짜리 신탁계정을 운용하고 있지만 인출이 안돼 대금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5억원을 결제용 계좌에 예치해 놓은 A기업은 월급이체도 못하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는 김모씨(48·여)는 “당좌개설을 한 대동은행 예금계좌에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지 못해 현금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도를 내게 됐다”며 발을 굴렀다.

대전 서구 탄방동의 하모씨(33·회사원)는 자동차보험료 등 50만원을 30일까지 내야하나 충청은행에 예금된 1백20만원을 인출할 수 없어 연체가 불가피한 실정.

▼전산망 복구 상황〓이날 대동은행은 백업작업을 완료하고 퇴직 전산운영요원을 수배했다.

동남은행은 시스템실장을 통해 전산요원을 동원하려했으나 실패했다. 보안프로그램의 암호를 해독해야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의 안전성이 떨어져 완벽한 온라인 가동은 어려운 상태다.

경기은행은 테스트용 패스워드를 풀었으나 작업용 패스워드를 풀지 못해 애를 먹었다.

충청은행은 단말기의 사용자번호와 비밀번호 1개를 입수했으나 완전복구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 충청은행을 인수하는 하나은행측은 담당 IBM기술진과 전산요원을 이날 급파했다.

일부 은행은 암호체계를 해독했으나 전산망 가동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금융사고 발생가능성 때문. 계좌내용에 조작이 있었을 경우 온라인이 가동되면서 이 조작사항이 관련 계좌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것.

▼퇴출은행 직원〓대동은행 직원 1천명은 이날 명동성당에 모여 농성을 벌였으며 동화은행 직원들은 이북5도민 회관에 모여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주택은행은 업무협조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동남은행 노조측과 이날 협상을 벌였으나 양측의 이견만 확인하고 무산됐다. 주택은행에 따르면 동남은행 노조측은 고용승계를 받지 못하는 직원들에 대해 명퇴위로금으로 3년치의 임금을 요구했다는 것. 주택은행 관계자는 “인수결정 전 주택은행에서도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위로금을 1년치만 지급한 상태인데 퇴출결정이 난 은행에서 3년치 명퇴위로금을 주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인수은행측은 전산직원 등 일부 핵심부서 직원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복귀할 것을 설득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는 상황.

▼미봉책으로 혼란 가중〓전산망 복구작업이 지연되면서 27일 지급제시된 퇴출은행들의 어음과 수표처리를 둘러싸고 금융당국간 혼선이 빚어져 은행권의 업무처리에 극도의 혼란이 빚어졌다.

금융계에 따르면 당국은 29일 오전 이들 어음과 수표의 결제시간을 오후 2시반에서 자정으로 연장했다가 전산망 복구가 늦어지자 다시 30일 오전 5시로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에 시간 연장방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바람에 30일 새벽 인수은행들은 부도처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국은 오전 5시 인수은행들에 어음과 수표를 전액 결제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H은행 관계자는 “이날 우리가 맡은 은행에 교환이 돌아온 어음과 수표는10만장”이라며“수작업이가능할 것으로 본 정부관계자들은 금융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불평했다.

소액인출의 경우 수기(手記)통장으로 거래하라는 당국의 주문도 사실상 ‘없었던 일’이 됐다. 현금카드로 돈을 찾아쓴 뒤 한두달에 한번씩 통장을 정리하는 현실도 모른 채 통장 잔액만 믿고 돈을 내주라는 당국의 주문은 일선에서 철저히 무시됐다.

▼유관기관 협조〓검찰은 이날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 노동부 경찰청 국가안전기획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안합동수사본부회의를 갖고 퇴출은행 직원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대검공안부는 퇴출은행 직원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정상적인 업무 인수인계를 계속 방해할 경우 핵심 주동자를 업무방해혐의로 사법처리하는 한편 영업장 점거와 기물파손 등의 폭력행위가 발생할 경우 즉각 공권력을 투입키로 했다.

한편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총재는 30일 시중은행들이 5개 퇴출은행의 어음과 수표를 수납할 경우 이를 담보로 여신을 지원함으로써 연쇄부도를 막는데 총력을 다해줄 것을 요청했다.

〈경제부·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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