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선거후 빅뱅 두렵다』 초긴장

  • 입력 1998년 6월 3일 19시 34분


‘6·4 선거 후가 두렵다.’

4일 지방선거를 전후해 재계와 노동계 등 경제계 전반에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동안 정치적 부담 때문에 미뤄왔던 부실기업리스트 발표나 대규모 정리해고 등 경제관련 대형 이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특히 당초 퇴출기업 명단에서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던 30대그룹의 부실계열사들이 막판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자 기업마다 초긴장속에 해당여부를 탐문하기에 분주하다.

기업관계자들은 정부의 정책혼선과 지나친 국민정서 의식에 불만을 터뜨리며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방식이 문제”라며 “해당기업에 통보해 유예기간에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최선인데 정부측은 충격은 도외시 하고 공개적인 선전효과를 너무 의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실기업리스트 발표〓각 은행들이 살생부(殺生簿)를 발표하면 마비상태에 있는 금융시장은 혼란이 더욱 가중되면서 난조의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계는 3일 ‘5대그룹까지 은행권이 강제 구조조정한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결정에 큰 충격을 표시하고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지난달 ‘부실기업’관련 파문으로 매물가격 폭락을 경험했던 일부 대기업들은 이번 발표가 또다시 외자유치 협상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협조융자를 받았던 일부 그룹의 경우 일차적으로 퇴출대상이 될 것으로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

그러나 삼성 현대 대우 등 5대그룹은 대그룹 주력 계열사가 실제 정리될 경우 금융권 및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이 엄청난 만큼 ‘정리대상이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비교적 낙관했다.

A그룹 관계자는 “30대그룹 계열사는 정리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정부 발표가 엊그제였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태”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가 은행이 결정한 부실기업결정을 뒤집으면서 시장원리 운운할 수 있느냐”고 ‘설익은’ 시장주의를 꼬집었다.

B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감정과 외국투자가들을 의식, 강수를 둔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 3일 증권가에는 최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한 ‘부실기업 처리회의’에서 퇴출대상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각 그룹들은 살생부에 들어갈 경우는 물론 요행히 제외된다 하더라도 살생부 공개로 인한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도려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꺼번에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며 “충격을 줄이기 위해 비공개로 단계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정리해고와 파업〓정부와 정치권의 압력 때문에 정리해고를 미뤄왔던 기업들은 선거이후 정리해고를 단행할 움직임이다. 8천여명의 정리해고를 추진중인 현대자동차가 조만간 노동부에 정리해고 계획을 신고할 예정이며 이를 도화선으로 나머지 그룹들의 주요계열사들도 대규모 정리해고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백명 이상 사업장 근로자 1백70만명 중 20%만 정리해고 당해도 34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10일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 노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 경총 관계자는 “총파업이 단행되면 수출기업의 생산차질은 물론 국가신인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어떻게 해서든지 노사가 함께 침몰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2기 노사정위원회 출범〓제2기 노사정위원회 협상과정에서 재벌개혁과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요구가 더욱 드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규모 정리해고를 앞두고 정부가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 재계에 더욱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중이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단지 노사정 협상을 위해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오히려 구조조정은 더욱 힘들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정치권이 국가적 현안인 경제회생노력은 외면한 채 비생산적인 정치공방을 계속할 경우 국가신인도가 하락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는 더욱 어려워져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영이·박래정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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