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텍 염사장의 한숨]『사준다는데』은행서 신용장 거절

  • 입력 1997년 12월 25일 20시 29분


『제품을 기다리다 못한 일본 수입업체가 「신용장으로 안된다면 수입대금을 송금해주겠다」고 팩스를 보내왔어요. 세상에 우리 제품을 사주겠다고 난리인데도 물건을 보낼 수가 없으니…』 유니텍케미컬 염병호(廉炳鎬·42)사장은 팩스 한장을 내밀며 『속이 다 타들어갈 지경』이라고 내뱉었다. 서울 도곡동에 자리잡은 유니텍은 접착테이프 전문 제조업체. 생산 전량을 일본 규슈 지방의 KU사에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작년 수출량은 5백만달러.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94년 설립 이후 3년째 착실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수출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은 10여일 전. 외환위기의 태풍이 이곳에도 불어닥쳐 은행들이 신용장 개설을 중단해버렸다. 거래해오던 몇 개 은행들이 『연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신용장을 받으려고 하지 않은 것. 당장 원자재를 구할 수 없었다. 원자재를 조금밖에 비축해 놓지 못했더니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거래은행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노(No)」. 그러는 사이에 수출 약속도 지킬 수 없었다. 일본 KU사는 날마다 성화를 해댔다. 『유니텍 제품만한 물건을 도저히 구할 수 없으니 제발 제품을 보내달라』는 「애원」이 매일 들어왔다. 속수무책. 염사장은 답답할 뿐이었다. 유니텍이 심각한 사태에 빠진 것을 비로소 알게 된 KU사가 24일 다시 팩스를 보내왔다. 「귀사의 거래은행이 저희 회사의 신용장에 대해 네고를 거절할 경우에는 귀사로부터 연락을 받는 즉시 선적 해당 물량에 대한 금액을 전신환으로 송금하겠으니 부디 물건을 보내주십시오」. 염사장은 이 팩스를 「보증서」삼아 거래은행을 다시 찾아다니고 있지만 아직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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