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순위 12위인 한라그룹이 6일 최종 부도처리되자 재계에서는 『경영환경이 바뀐 것을 모르고 과거처럼 사업확장 의욕만 불태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라그룹은 작년 삼호조선소 등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자금난이 심화, 올해초부터 사업 구조조정을 서둘러 왔지만 실효를 채 거두기도 전에 「금융기관 빅뱅」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창업주인 정인영(鄭仁永·77)명예회장은 구조조정 과정중에도 막무가내로 사업을 확장, 올 초 경영 대권을 물려받은 차남 정몽원(鄭夢元·41)회장이 뒷수습을 하느라 애를 먹었던 것을 알려졌다.
정명예회장은 지난 80년 산업합리화조치때 신군부에 현대양행을 빼앗기면서 좌절됐던 「중공업 왕국의 꿈」을 재건하는데 온힘을 쏟아왔다.
그 과정에서 작년 삼호조선소를 비롯, 산업기계공장 플랜트설비 등을 건설하는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한라중공업은 세계적인 조선경기 호조 덕분에 대량수주에는 성공했으나 가격덤핑으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 작년에만 4백78억원의 적자를 냈다. 거기에 동남아 등지의 경기침체로 중장비 플랜트 수출마저 크게 줄었다.
정명예회장은 올들어 국내의 사업확장이 어려워지자 해외기업들과의 합작을 적극 추진, 신규사업 의향서에 사인한 것만도 중국의 건설합작사, 필리핀의 시멘트공장 등 10여건에 이른다.
그는 94년이후 3년연속 2백일이상을 해외에서 보냈으며 올해 출장일수도 1백60여일이나 되는 등 해외사업에 유난히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확장보다는 수성(守城)」을 강조하는 정몽원회장의 만류로 실제 착수된 사업은 평균 20%에도 못미친다.
현재는 지난 5월과 작년 4월에 준공된 영국웨일스 중장비공장과 중국 중장비자동차 부품공장만이 가동중이다.
재계 일각에선 한라의 사업구조가 현대그룹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정명예회장이 현대측의 지원을 믿고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신군부때 기업을 빼앗긴 충격때문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재기, 「휠체어의 부도옹(不倒翁)」으로 불렸던 그가 그룹 최대위기를 다시 넘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