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李會昌(이회창)대표가 14일 기아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은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경제문제」이자 동시에 「정치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기아사태의 장기화로 국내 경제가 회복하기 힘든 복합불황에 빠져들 경우 대선정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정부는 지금까지 「시장원리존중」과 「민간부문 불개입」이라는 원칙에 따라 극히 제한적인 선에서 대응해왔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마땅치 않아 하면서도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묘책도 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방관이 삼성그룹의 기아인수를 위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는 풍문이 나도는 등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이대표가 집권당 대선후보로서 직접 나서야겠다는 뜻을 굳힌 것 같다.
이날 이대표의 기아 소하리 공장방문에 앞서 핵심측근인 徐相穆(서상목)의원은 정부와 기아그룹사이에서 막후조정작업을 벌였다. 기아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관계자들간의 뿌리깊은 불신부터 해소해야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의원은 지난 9일 林昌烈(임창열)통상산업부장관 金善弘(김선홍)기아그룹회장과의 「3자회동」에서 정부측에 대해서는 『현 경제팀이 이번 사태수습을 책임지라』고 설득했고 기아측에 대해서는 『정부가 왜 기아를 특정그룹에 넘기려고 하겠느냐』며 오해를 푸는 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임장관도 姜慶植(강경식)부총리와 채권은행단을 만나 기아측의 자구노력강화를 전제로 기아지원을 확대하자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이대표가 표명한 「기아해법」은 그동안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요구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으로 현 기아경영진이 사퇴하지 않고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한 뒤 책임을 진다는 기아측의 요구를 상당히 수용했다. 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아그룹이 회생돼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한 대목에서는 이대표의 개혁적인 기업관이 드러난다.
이대표가 제시한 해결책을 과연 정부가 수용해 채권은행단의 금융지원이 재개될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기아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