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부도/풀리지않는 의혹]허가-대출 모두 베일에

  • 입력 1997년 1월 24일 07시 59분


한보철강은 출발부터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특히 공장건설과 관련한 은행권의 대출과정을 보면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행동이 눈에 띈다. 이때문에 한보의 자금줄을 둘러싸고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다. 그동안 고비고비마다 돌파력이 돋보였던 鄭泰守(정태수)총회장도 이번만은 빠져나가기가 간단치 않을 것 같다. ▼사업허가 경위〓한보그룹은 금호철강을 인수, 소규모 철강사업을 벌이다 지난 90년12월 아산만 80만평 매립공사허가를 받아내 5조7천억원규모의 철강단지사업 발판을 마련했다. 한보는 이어 6공특혜시비에 휘말렸다. 지난 91년 수서사건이 터졌을 때는 그룹이 큰 위기를 맞았다. 문민정부들어서는 한보가 장기저리의 정책금융을 받아 당진공장 건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94년에는 무려 1조원이 들어가는 코렉스공법기술도입신고서를 정부에 제출, 투자에 열을 올렸다. 정부는 기술도입신고가 신고사항으로 하자가 없다며 신고서를 수리했다. 그러나 현대가 제철업진출을 추진할 때 이를 저지했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자본금 9백억원에 불과했던 한보철강이 자본금의 60배가 넘는 5조7천억원의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에 정부당국이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은행들의 대출경위 의혹〓한보그룹이 지난 94년 30대 여신기업군에 편입될 당시 제일 조흥 서울은행등은 서로 한보의 주거래은행 맡기를 꺼렸다. 지난 91년 수서사건이후 보험 종금사 등 제2금융권이 한보 대출금을 회수, 제2금융권의 자금줄이 거의 막히면서 회사의 재무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은행감독원이 중재에 나서 제일은행이 주거래은행으로 정해졌다. 이런 회사가 4조3천억원의 초대형 아산만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데 은행들이 3조5천억원의 거액을 줄줄이 대출해준 것은 상식적인 금융관행으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0일 현재 한보철강의 총차입금은 4조9천5백억원에 달하며 이중 은행으로부터의 여신(대출금+지급보증)은 3조4천7백87억원에 달한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1조1천억원을 비롯해 산업은행 8천9백억원, 조흥 5천21억원, 외환 4천5백억원, 서울 2천25억원 등의 여신이 나갔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설비자금을 대출해 주면서부터 은행들이 믿고 따라가면서 물려들었다』고 털어놨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설비자금을 대출해준데다 한보측이 제일 산업 조흥 외환은행에 시설재도입 신용장(LC)3억달러씩을 배정, 발을 빼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은행으로서는 외환거래실적으로 잡히는데다 수백억원대의 수수료 수입을 올리는 재미에 빠져 계속 거래를 하다가 물렸다는 게 은행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한보철강의 투자가 진척될수록 사업비가 불어나 당초 2조7천억원에서 5조7천억원으로 불어났는데도 은행권은 사업계획에 대한 재검토 없이 계속 지원을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보그룹은 막대한 돈을 끌어다 쓰면서도 4천3백억원의 부채를 안고있는 유원건설을 인수하는 등 끝없는 영토확장을 꾀하는 괴력을 보였다. 한 은행관계자는 『자금상태가 좋지않은 한보에 대해 은행들이 누군가의 언질이 없었다면 선뜻 지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몰락경위〓잘나가던 한보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정총회장이 95년말 盧泰愚(노태우)비자금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부터. 그때 당장 사업차질이 빚어졌다. 작년말엔 「한보그룹이 문민정부 정치권 실세와의 인연이 끊어졌다」는 설이 증권가에 나돌기도 했다. 이즈음 채권은행들은 당진공장 완공을 목전에 둔채 그동안의 계속적인 지원에서 「무작정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당시 채권은행들은 모처에 이같은 은행의 입장을 타진한 결과 예상외로 「알아서 하라」는 반응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은행들이 정총회장을 경영권에서 떼내기 위한 수순은 주식담보와 경영권포기라는 카드였다. 은행이 담보를 요구한 정총회장일가 지분은 19%인 3백60만주, 시가로 치면 2백10억원에 불과한 금액이다. 그러자 한보측은 『최근 완공한 냉연 열연공장을 담보로 맡길 경우 충분하기 때문에 이달말 감정평가가 나와 그래도 부족하다면 그때 주식을 맡길 수 있다』며 반발했다. 제일은행 관계자도 『냉연 열연공장의 감정평가뒤 부족한 부분에 대해 주식을 담보로 하겠다는 한보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말을 했다. 아무튼 은행들이 한보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보인 태도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공장 완공때까지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했다가 다음날은 부도불사라며 초강경태도를 보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어디선가 지침을 받아 처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최근 한보의 자금난문제를 집중보도하는 바람에 한보철강에 대한 처리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라고 말해 이미 은행 정부 정치권사이에 깊숙한 얘기가 오갔음을 시사했다. 아무튼 천문학적인 대출이 한보의 능력과 신용, 또 이에 대한 은행의 자체평가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여러 측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금융가에선 과거 정치권력이 금융에 압력을 행사한 이상의 외압이 아니고선 이런 유의 대출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白承勳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