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가 풀어낸 모차르트, 엷은 미소로 보여주는 마법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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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중 첫 음반 들어보니
차분한듯 다이내믹 화음 돋보여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이 ‘모차르트 음악은 아이가 치기엔 너무 쉽고 어른이 치기엔 너무 어렵다’고 한 말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8)가 생애 첫 모차르트 음반(사진)을 내놓았다. 예정된 ‘모차르트 3부작’의 첫 결실로 14일 발매한 ‘모차르트: 피아노 작품 1’ 앨범에는 판타지아(환상곡) K397을 첫 곡으로 소나타 12번 K332, 어린 연주자부터 대가급까지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즐겨 연주하는 소나타 16번 K545, 마지막 트랙에 실은 ‘전주곡과 푸가’ K394 등 일곱 곡을 담았다.

연주장이 마법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면 백건우는 ‘보십시오, 모자에서 토끼가 나왔어요’라며 호들갑을 떠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가만히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놓고, 관객이 탄성을 지르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엷은 미소를 짓는 마법사다. 작품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낱낱이 드러내되 듣는 사람의 귀에 인지되기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이 새 앨범에도 드러난다.

첫 곡인 환상곡 K397에서 백건우는 1부의 펼침화음을 과도한 몰입이나 침잠 없이 넓게 펼쳐낸다. 일부러 긴장을 조성하지 않는다. 알베르티 베이스(왼손 화음을 도솔미솔 식으로 펼쳐내는 수법)의 정석으로 꼽히는 소나타 16번에서 비킹구르 올라프손 식의 빠른 연주나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소리를 강조하는 우치다 미쓰코 식의 터치는 없다. 달려 나가기보다는 펴 바르는 느낌이고, 두 번째 주제는 미세하게 늦춰 나간다.

소나타 12번은 한층 무거우며 다양한 화음의 결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1악장 제2주제에서 살짝 다이내믹(강약대조)을 더 주면서 한결 내면으로 연소하는 표정을 선보인다. 그러나 연소는 너무 뜨겁지 않게 진행되고, 적절한 시점에 회수된다.

앨범 전체에 걸쳐 왼손과 오른손의 다이내믹(강약)을 크게 대조하지 않는다. 투명한 터치를 자아내려 굳이 애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에 연주자의 주장이 실린다. 녹음 공간의 음향 역시 둔중한 울림을 주지 않은, 밝고 가벼운 편이어서 이런 표정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앨범 표지는 ‘나만의 느낌으로 그리는 백건우와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대상 공모전을 열어 뽑은 백건우의 모습을 넣었다. 백건우는 6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백건우와 모차르트’ 리사이틀을 연다. 이달 24일 성남 아트리움, 25일 안양 평촌아트홀, 6월 1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8일 여주 세종국악당, 15일 인천 중구문화회관에서도 리사이틀이 열린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백건우#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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