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지 해인지 아리송한 그 순간, 자연과 내가 하나됨을 보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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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개인전 여는 김병종 교수
내달 30일까지 U.H.M.서 48점 전시… 자연에 압도됐던 유년 경험 등 그려
“붓 한자루로 호랑이와 싸운다 생각, 새벽 5시부터 작업… 열정 끓어올라”

서울 용산구 갤러리 U.H.M.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겸 가천대 석좌교수가 9일 꽃을 소재로 한 
생명 시리즈 신작 ‘생명의 노래―화홍산수’ 앞에서 미소지었다. 김 교수는 “새벽에 커피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용산구 갤러리 U.H.M.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겸 가천대 석좌교수가 9일 꽃을 소재로 한 생명 시리즈 신작 ‘생명의 노래―화홍산수’ 앞에서 미소지었다. 김 교수는 “새벽에 커피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생명을 주제로 작업해 온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겸 가천대 석좌교수(69)가 서울 용산구 갤러리 U.H.M.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21점을 포함해 총 48점을 선보인다.

전시 개막일인 9일 갤러리에서 만난 김 교수는 “최근 200호, 300호가 넘는 대작들과 씨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화홍산수’, ‘풍죽’, ‘송화분분’ 등 100호가 넘는 큰 작품을 다수 선보인다. 새로 제작한 작품은 2022년작 10점, 2023년작 11점이다.

김 교수는 “주로 새벽에 작업실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붓 한 자루를 들고 캔버스 앞에 섰을 때 교차하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주로 밤에 작업했지만, 요즘은 오전 5시쯤 작업실로 이동해 오전 11시까지, 어떨 때는 저녁까지도 작업을 이어간다고 했다.

“요즘 저의 은사님이셨던 서세옥 작가(1929∼2020)의 말씀이 종종 떠올라요. 창 대신 붓 한 자루 들고 호랑이 앞에 선 것처럼 정면 대결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죠. 대학을 떠난 지 이제 햇수로 5년이 돼 가는데, 작품에 대한 열정은 지금 가장 많이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위부터) ‘생명의 노래-풍죽’, ‘생명의 노래-12세의 자화상’ 갤러리 U.H.M. 제공
(위부터) ‘생명의 노래-풍죽’, ‘생명의 노래-12세의 자화상’ 갤러리 U.H.M. 제공
한가운데 꽃을 그린 ‘생명의 노래―화홍산수’(2022년)에 대해서는 “어릴 적 멱을 감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꽃의 형상이 나를 압도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린 것”이라며 “갑자기 꽃이 크게 보이면서 해인지 꽃인지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랑, 연노랑 작은 점들이 가득한 가운데 바닥에 엎드린 소년이 이를 바라보는 ‘생명의 노래―12세의 자화상’(2021년)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세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그림 작업뿐 아니라 저서 집필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 여행기를 시와 그림으로 풀어낸 ‘시화기행’ 두 권을 펴냈다. 조만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생명을 주제로 한 대담을 엮어 ‘생명 칸타타’(가제)를 출간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과학자의 관점에서, 김 교수는 예술가의 관점에서 생명에 관해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김 교수는 지난해 작고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도 각별하고 깊은 인연을 맺었다. 2014년 ‘김병종과 이어령의 생명 동행’ 전시를 열고, 이 전 장관의 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김 교수가 직접 현장에서 붓으로 쓰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쯤 “내가 퍼뜨린 문자의 밈(meme)으로 내 후손이 남겨진다고 생각한다”며 “김 교수는 색채와 형상의 밈을 많이 퍼뜨려 후손으로 번성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 금요일에 뵙기로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약속을 미루며 못 만날 것 같다고 하시고는 저희 집으로 하얀 난을 보내셨죠.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우리가 남긴 문자와 색채의 밈이 사방에 퍼져 날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하신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김 교수는 요즘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향해 “내 정신을 잘 담아달라”거나 “죽어있는 물질이 아닌 생동하는 밈으로 가득 차 반응해 달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아직 제 양쪽 눈의 시력이 모두 1.5이고, 정신과 몸 상태도 최고조에 오른 것 같습니다. 다시 200호, 300호짜리 화판을 다량 맞췄어요. 대작을 그리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4월 30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병종 교수#개인전#u.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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