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소설과 시를 쓰듯 건축물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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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건축가 마야 린 용산서 개인전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미국의 건축가이자 조각가 마야 린. 제시 프로마 제공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미국의 건축가이자 조각가 마야 린. 제시 프로마 제공
푸른 대지를 칼로 자른 듯,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미국 워싱턴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공공 기념비 중 하나다. 크고 높게 지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용히 어우러져 ‘부끄러운 상처’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23세 예일대 학생일 때 디자인 공모에서 우승해 이 기념비를 만들고, 지금은 미국에서 존경받는 건축가인 마야 린(64)이 지난달 31일 한국을 찾았다.

중국계 미국인인 린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작은 개인전 ‘자연은 경계가 없다’를 열고 있다. 전시장에는 한반도에서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을 표현한 ‘핀 강―임진과 한’(2022년) 등 조각·설치 작품 5점이 걸려 있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린은 “(국경과 관계없이) 흐르는 물과 산맥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예술과 건축을 병행하는 그는 “건축은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것과 같고 예술은 시를 쓰는 일 같다”며 “그리고 기념비는 상징성과 건축적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에 이 둘을 합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대표작인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대해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살을 베이는 듯한 고통”이라며 “언젠가는 이 상처가 낫겠지만 흉터는 남는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땅을 칼로 벤 듯 잘라낸 뒤 드러난 단면에 반짝이는 화강암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국인 5만5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 기념비에는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의 발길이 이어진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그는 2025년 완공될 시카고 오바마 대통령 센터의 공공 조각 제작도 맡고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예술인에게 시상하는 ‘크리스털 어워드’를 수상했다. 3월 11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건축가#마야 린#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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