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이민자 지역이 ‘청년 문화교육 중심’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9일 10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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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과 청년층 많아 새 청중 끌어들일 수 있는 곳
유행음악에도 문호 개방…좌석 사이 격차 최소화

2015년 1월, 파리 북부 라 빌레트 공원 남동쪽에 은빛 우주선과 같은 형체가 내려앉았다. 파리의 새 음악공연장 ‘필하모니 드 파리’였다. 미래와 상상력을 상징하는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 이 공간은 이제 탄생 8년이 지나 청년층과 미래의 예술 애호가를 끌어들이고 교육하는 젊은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6년 프랑스 문화부와 파리시, 파리 중심가의 콘서트홀 살 플레옐의 감독인 로랑 베일은 “파리 북동쪽 19구(區)의 라 빌레트 공원에 콘서트홀과 음악교육 시설, 전시회장 등을 갖춘 복합시설 ‘필하모니 드 파리’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우주선이나 미래도시를 연상시키는 ‘필하모니 드 파리’의 외관. 필하모니 드 파리 홈페이지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 새 콘서트홀을 짓기로 한 데는 청년층과 서민층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파리 19구는 저소득층과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프랑스 정부는 강도 마약 같은 범죄가 빈발한다며 2012년 이곳을 ‘특별치안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기존의 중심가 콘서트홀인 살 플레옐은 젊은 관객들의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주변의 고답적인 분위기부터 청년층을 끌어들이기 어려웠다. 반면 파리 북쪽 지역은 서민과 청년층 주민의 비율이 높았다. 베일은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가고 교외와 도심을 통합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랑 파리(Grand Paris)다”라고 말했다. 새 콘서트홀은 클래식에 국한하지 않고 재즈와 유행음악, 록음악, 세계음악에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예술전시장도 마련하기로 했다.

공모에 의해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 계획안이 최종 채택되었다. 누벨은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랍문화원과 카르티에 재단,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설계한 건축 거장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2015년 1월 14일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포레 ‘레퀴엠’ 연주로 문을 열었다. 안정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바로 1주일 전 풍자 만화잡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주범들의 집도 파리 19구였다. 포레 레퀴엠은 이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이 되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메인 콘서트홀인 ‘피에르 불레즈 그랜드 홀’에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가 연주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필하모니 드 파리 홈페이지
필하모니 드 파리의 중심 공간은 메인 콘서트홀인 ‘피에르 불레즈 그랜드 홀’이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의 이름을 딴 이 홀의 내부도 외관만큼이나 파격을 넘는 낯설음을 안겨준다. 2층과 3층에 발코니형 객석들이 공간을 비죽비죽 치고 나와 있다. 관객이 사방에서 무대를 감싸는 비니어드(포도원)형 콘서트홀의 객석을 마치 집게로 여기저기 잡아당겨 놓은 것 같다.

객석 수 2400석이나 되는 공간이지만 무대에서 가장 먼 객석까지의 거리가 32미터밖에 되지 않아 좌석 등급간의 격차감이 적은 ‘가장 평등한 콘서트홀’로 꼽힌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콘서트홀이라면 40~50미터의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교육센터에서는 독주에서부터 갖가지 규모의 합주까지 다양한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청년층에게 다가가겠다는 이념이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걸어서 지붕 위 37m 높이 전망대에서 파리의 멋진 전망을 조감할 수도 있다.

티켓 가격은 클래식 음악의 경우 100~160 유로 정도로 청년층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다. 록이나 세계음악 등의 장르 경우 절반 정도는 40유로 이하의 가격에 하룻저녁의 멋진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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