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경제학자가 바꾼 세계, 충분히 살 만했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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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시대/빈야민 애펠바움 지음·김진원 옮김/752쪽·3만5000원·부키

“자유시장 경제학이 거둔 승리는 밤에 촬영한 한반도 위성사진으로 설명되곤 한다.…인상 깊은 모습이지만 그 의미가 종종 잘못 해석된다. 다른 부유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경제를 신중하게 조종하며 번영을 일궈냈다. 이 이야기는 국가가 운전대에서 두 손을 모두 떼기로 결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제목만 보면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향한 찬사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경제 주필인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부제에 명확히 담겼다.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혁명엔 성공했지만 잘못된 예측으로 미래를 망쳤다는 힐난이다.

저자가 ‘경제학자의 시대(Economists‘ hour)’라고 일컫는 시기는 1969∼2008년. 1969년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1913∼1994)이 당대 ‘경제학자의 상징’이던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권고를 받아들여 징병제 폐지 자문위원회를 꾸렸던 해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저자는 이때를 “시장의 힘과 영광을 믿는 경제학자가 영향력을 발휘해 정부 사업과 운영 방침에 변화를 꾀하고, 그 결과 일상생활도 모습을 바꾼” 시기였다고 본다.

재밌는 건, 그전까지 경제학자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1950년대 연방준비은행 수뇌부엔 양돈업자도 있었지만 경제학자들은 지하사무실에서 ‘참고 서류’나 작성했다고 한다. 그마저도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았다. 경제학자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된 건 혁명이나 다름없는 변화였다.

하지만 자유시장주의는 이후 불변의 진리로 여겨지며 세계적 대세가 됐지만 끝이 좋질 못했다. 금융위기 이후 드러났듯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부 재정을 악화시켰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의견에 동의하건 안 하건, 딱딱한 경제 용어와 생경한 미국 상황이 적지 않은데도 역사소설처럼 술술 넘어가는 대단한 책이다.

“시장경제는 가장 놀라운 인간의 발명품이다. 부를 낳는 강력한 기계다. 하지만 한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는…가장 아랫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의도적으로 번영의 분배를 외면해왔다. 이 때문에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선동을 일삼는 국수주의 정치가한테 그 생존을 시험당하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경제학자#자유시장주의#국가 경제정책#불평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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