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네덜란드 미술혁명 촉발한 블루오션 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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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술관/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음·서수지 옮김/292쪽·1만7500원·사람과나무사이

1566년 8월 21일 네덜란드 안트베르펜 성당. 난입한 군중이 온갖 성상(聖像)들을 끌어내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우상숭배를 배격한 프로테스탄트 방침에 따라 신자들이 성상 파괴에 나선 것. 대부분의 예술품이 교회나 국왕의 주문으로 만들어질 때라 미술판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비견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세기 뒤 네덜란드 미술계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의 거장들이 출현하며 빅뱅을 일으킨다. 이어 네덜란드 출신의 고흐와 몬드리안이 각각 인상주의와 추상회화를 이끈다. 도대체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책은 미술사 책이지만 단순히 미술사조나 양식, 구도를 읊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술품들의 저변에 깔린 흐름을 포착해 이것이 인간의 욕구나 이를 매개로 한 역사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석한다. 판화가이자 미대 교수인 저자는 마치 명쾌한 학술논문처럼 서문에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뒤 본문에서 이를 착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이 과정에 원작을 담은 다양한 컬러 도판들이 한몫한다.

저자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일종의 ‘블루오션’ 전략에서 찾는다. 교회의 주문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미술시장이 종교개혁으로 붕괴되자, 예술가들이 일반 시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찾아 나섰다는 것. 그 결과는 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물건이나 풍경을 담는 정물화와 풍경화였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정물이나 풍경만을 따로 그린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건이나 풍경은 성경이나 신화의 한 장면을 설명하는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푸딩을 만들려고 우유를 그릇에 따르는 모습을 포착한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1660년)이 대표적이다. 새벽 여명이 비치는 부엌에서 조용히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몸짓이나 표정, 구도에서 삶의 엄숙함 나아가 소명의식이 연상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보다는 날마다 맞닥뜨리는 현실에 담겼음을 보여주는 걸작 아닐까.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네덜란드#미술혁명#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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