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 시절의 낙태’… 적나라한 묘사에 모두 얼어붙은 ‘체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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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황금사자상 佛 ‘레벤느망’
1963년 ‘낙태 시도’의 처절함 담아
주인공과 한 몸 같은 촬영기법 눈길
심사위원장 봉준호 “정말 사랑한다”

영화 ‘레벤느망’에서 ‘안’(오른쪽)이 스스로 낙태 시도를 했지만 태아가 온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 모습. 영화특별시SMC 제공
영화 ‘레벤느망’에서 ‘안’(오른쪽)이 스스로 낙태 시도를 했지만 태아가 온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 모습. 영화특별시SMC 제공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안’(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은 같은 과 친구들이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로 똑똑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는 부모와 교수 등 주변인의 기대를 받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안에게 의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임신입니다.” 안이 벌떡 일어난다. “그럴 리 없어요.” 얼마 뒤 임신확인서가 기숙사로 날아온다.

10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레벤느망’은 안이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한 뒤 낙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배경인 1963년은 프랑스에서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고 여성을 처벌하던 시기다. 안은 확고하다.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지만 인생과 바꾸긴 싫어요.”

영화는 ‘5주 차’ 등의 자막으로 시간의 경과를 알린다. 흐르는 시간에 비례해 안의 불안감은 고조된다. 친한 친구들마저 “감옥 가고 싶냐”며 그를 외면한다. 안은 고군분투한다.

그가 낙태를 시도하는 과정은 관객의 몸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날것 그대로 담긴 탓에 관객들은 안처럼 초조해진다.

관객의 몰입을 끌어올리는 데는 촬영 기법이 큰 몫을 했다. 안을 중앙에 두고 주로 버스트숏(가슴 위를 촬영하는 기법)이나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식으로 안의 표정과 눈빛에 온전히 집중하게 한 것. 카메라는 안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고요한 가운데 안의 호흡만 담아낸 장면들은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

영화는 지난해 9월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고 극찬했다.

원작은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의 에세이 ‘사건’이다. 1960년대에 에르노가 목숨을 걸고 시도한 낙태 경험을 담은 책이다. 그는 영화사에 보낸 편지에서 “이 영화는 안의 시점에서 몸짓, 침묵 등을 통해 갑작스러운 비극을 그려낸다”고 평가했다. 충격적인 장면들에 대해선 “오드리 디완 감독은 잔혹한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고 했다.

디완 감독은 영화에서 낙태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한 여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고 남녀 모두가 낙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안처럼 고통스러워지는 동시에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극찬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감독은 영화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시대나 성별을 초월한 신체적 경험으로 바꾸고 싶었다. 영화가 관객에게 하나의 체험이 되길 바란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레벤느망#낙태금지#황금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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