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때 대형 항아리로 세금 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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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교수 “부소산성 명문토기
미판독 글자는 ‘물장군 장’ 字”
지역특산물 내는 공납제 뒷받침

지난해 12월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 실물(위 사진). 이 파편 위에 새겨진 명문을 삽화로 표시하면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가 된다(아래 사진). 그동안 판독 불가였던 ○를 ‘대형 항아리’로 해석해 백제 공납의 근거로 제시한 견해가 최근 나왔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12월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 실물(위 사진). 이 파편 위에 새겨진 명문을 삽화로 표시하면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가 된다(아래 사진). 그동안 판독 불가였던 ○를 ‘대형 항아리’로 해석해 백제 공납의 근거로 제시한 견해가 최근 나왔다. 문화재청 제공
백제시대 때 큰 항아리를 조세로 납부한 사실을 추정케 하는 고고학 증거가 처음 발견됐다. 백제에서도 이른바 공납제(貢納制·각 지방 특산물을 국가 조세로 걷는 것)가 시행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이병호 공주교육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부소산성 출토 명문 토기에 대한 검토’ 논문에서 지난해 12월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토기에 새겨진 글자를 추가로 해석했다. 당시 토기를 발굴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는 판독 불가)의 명문을 ‘을사년(645년) 3월 15일 모시산(牟尸山)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일본 고고 유적들에서 출토된 다양한 토기 명문을 검토한 뒤 판독 불가 글자를 ‘S’(물장군 장)의 이체자로 파악했다. 물장군이란 배가 불룩하고 목이 좁은 질그릇을 말한다.

이 교수는 이 글자가 백제에선 높이 90cm 이상의 ‘대형 항아리’를 뜻한다고 보고 있다. 일본 나라(奈良)현 아스카이케(飛鳥池) 유적에서 출토된 글씨연습 목간이나 헤이조큐(平城宮)의 술 제조관청 항아리 명문, 후쿠오카(福岡)현 우시쿠비(牛頸) 가마터의 스에키 항아리 명문 등에서 같은 글자가 확인됐는데 모두 대형의 저장용 항아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명문 토기 파편의 길이(가로 46.7cm, 세로 43.8cm)와 곡률을 감안하면 원래 토기의 높이는 90cm가 넘었을 걸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 대형 항아리가 공납이 됐다고 보는 근거는 뭘까. 이 교수는 토기가 출토된 장소와 더불어 일본 고고 자료, 중국 문헌기록에 주목하고 있다. 부여 부소산성은 사비백제시대 왕궁(관북리유적)의 배후 산성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세를 거둬들인 백제 중앙과 직결된 장소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우시쿠비 가마터에서 ‘713년에 대형 항아리를 공납으로 바쳤다’는 내용의 명문이 발견됐다.

구당서(舊唐書) 백제전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조세제도가 같다고 기록돼 있다. 또 주서(周書) 고구려전에 “고구려는 세금으로 명주, 베, 곡식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바에 따라(隨其所有)’ 빈부차등을 헤아려 받았다”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해 백제 역시 고구려처럼 지역특산물 등 현물을 조세로 걷어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토기가 나온 곳이 금강과 연결된 부소산성 북문 터와 가깝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현물 조세가 수운(水運)을 통해 이곳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금강을 통해 북문 터 일대를 거쳐 왕궁이 있는 쌍북리 일대로 공납품 등이 공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백제시대#대형#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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