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사회주의와 레닌 알려면 동아일보 1면을 보세요”

이진 기자 입력 2020-06-30 11:40수정 2020-06-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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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8월 30일


플래시백
1921년 6월 3일자 동아일보 1면에 ‘니콜라이 레닌은 어떠한 사람인가’ 1회가 실립니다. 민족 신문인 동아일보에 말이죠. 그것도 무려 8월 31일자까지 매번 1면에 장기 연재합니다. 조선에 공개적으로 소개된 최초의 레닌 전기였죠.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를 제대로 알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이해 1월 사회주의 성향의 서울청년회가 조직돼 조선청년회연합회에서 입김이 커질 정도로 사회주의 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의 본명입니다. 1870년 볼가 강변 심비르스크에서 태어난 그는 형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가 황제 암살음모에 연루돼 사형당하면서 혁명의 길로 발을 내딛습니다. 페테르부르크대학을 마치고 변호사로 잠깐 활동했지만 이마저도 곧 헌신짝처럼 버렸죠. 제정러시아의 사법제도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의 후진국으로 많은 농노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죠. 농노를 ‘죽은 영혼’ 또는 ‘세례를 베푼 재물’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레닌은 농민보다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노동자에 집중합니다. 위험인물로 낙인찍힌 레닌은 1897년 시베리아로 추방된 이후 20년간을 추방 유형 망명으로 점철된 시련의 세월 속에서도 혁명을 포기하지 않았죠.

레닌은 러시아혁명에 성공한 뒤 하루 15~18시간 일했고 긴급소식이 올까봐 옷을 벗고 편하게 잠자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고 한다. 암살자의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뒤 가까스로 회복하는 기간에도 노동자보다 더 많이 먹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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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베리아 유형이 끝나자 해외에서 잡지 ‘이스크라’를 창간합니다. ‘불꽃’이라는 뜻이지요. 1901년 이 잡지에 ‘무엇으로부터 착수할 것인가’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다듬어 이듬해 소책자 ‘무엇을 할 것인가’를 펴냅니다. ‘레닌주의’의 핵심을 담았죠. 1903년 제2회 사회민주당 대회가 열리자 레닌은 다수파를 뜻하는 볼셰비키를 이끌며 당을 분열시킵니다. 비웃는 상대에게 “최후에 웃는 자가 정말로 웃는 자다”라고 오히려 비웃어주죠. 볼셰비키는 이후 소수파로 몰리지만 수적 열세를 폭력과 테러를 앞세워 돌파합니다.

레닌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제국주의전쟁 반대’와 ‘차르정부 타도’를 주장합니다. 애국심에 불타 전쟁에 찬성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과는 정반대였죠. 국제노동자조직인 ‘제2인터내셔널은 죽었다’라며 갈라서고 ‘무배상 무병합 즉시평화 민족자결’을 외칩니다. 이 무렵 ‘성자 라스푸틴이 없으면 황태자도 없다’며 황후가 떠받들던 ‘괴승 라스푸틴’이 암살되죠. 러시아 곳곳에서 ‘우리에게 빵을 달라’며 파업과 유혈폭동이 일어나며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습니다.

황제가 쫓겨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한편으로 각지에서 ‘노동자병사 소비에트’도 생겨났습니다. ‘이중 권력’의 시기였죠. 레닌은 망명지에서 ‘봉인 열차’를 타고 독일을 거쳐 돌아옵니다. 그는 즉각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임시정부 타도’를 외칩니다. 자산가계급의 수단이 되지 말라며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죠. 1917년 10월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입니다.

미국 언론인 존 리드는 레닌이 '키는 작고 대머리이며 눈도 작고 사자코에 입은 넓직한데다 볼은 부었다'고 묘사했다. 리드는 인류 역사상 비교할 수 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는 우상치고는 외모가 너무 비인상적이라고 평했다.


글을 쓴 기자는 러시아혁명은 90%가 레닌 덕분이라고 점수를 줍니다. 레닌은 돈과 명예로 현혹되지 않고 가난과 비천함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위협과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평가하죠. 혁명가가 갖출 요소는 오직 사상과 주의와 성력(誠力)이라는 겁니다. 레닌이 보여준 것처럼 노동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긴다는 점은 추정하기 어렵지 않다고도 했죠.

이 연재물은 논설반 기자 김명식이 썼습니다. 레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짐작하듯이 김명식 본인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아직 ‘강단 사회주의자’ 단계라고 볼 수 있겠지만요. 김명식이 동아일보를 떠나 새로운 활동을 할 때 레닌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주간 장덕수도 레닌으로부터 뜻밖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 내용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습니다.

끝으로 ‘니콜라이 레닌은 어떠한 사람인가’는 지면에 표기된 61회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7월 7일자가 20회였는데 7월 8일자는 22회로 건너뛰었죠. 연재를 오래 이어가다 보면 이런 실수가 간혹 나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연재물은 총 60회로 마무리됐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니콜라이 레닌은 엇더한 사람인가(六十·60)

二十(20)、結論(결론)(續·속)


그런대 露西亞主義(노서아주의)가 過然(과연) 歷史的(역사적) 進化(진화)로 地理的(지리적) 變遷(변천)으로 特殊(특수)한 文明(문명)을 建設(건설)하야 新社會(신사회)에 新天地(신천지)를 開拓(개척)할지 否(부)할지 未知(미지)이로되 世界(세계)의 大勢(대세)는 그 事實(사실)을 說明(설명)한다 하야도 過言(과언)이 아니니 그런즉 新露西亞(신로서아)에 新社會(신사회)를 建設(건설)하는 者(자)는 그 누구인가. 剛毅不屈(강의불굴)하는 鐵血男兒(철혈남아) 레닌 그 人(인)이로다.

레닌이 露西亞歷史(노서아역사)를 劃(획)하얏는가. 露西亞歷史(노서아역사)가 레닌을 産(산)하얏는가. 專制君主(전제군주)와 官僚政治(관료정치)와 資本(자본)의 貪婪(탐람)이 極度(극도)로 抑壓(억압)하고 極度(극도)로 跋扈(발호)한 것은 露西亞人(노서아인)으로 하야금 恐怖(공포)(테로리쓰트)를 生(생)케 하얏고 恐怖(공포)는 極端(극단)의 思想(사상)을 誘致(유치)하얏스며 極端(극단)의 思想(사상)은 徹底(철저)한 人物(인물)을 産(산)하얏나니 故(고)로 徹底(철저)한 人物(인물) 레닌이 出來(출래)함은 露西亞(노서아) 歷史(역사)가 産(산)함이오 露西亞(노서아) 歷史(역사)는 이제 內容(내용)과 組織(조직)이며 文章(문장)과 說明(설명)이 一變(일변)하야

『주아』의 領德章(영덕장)과 僧侶(승려)의 神敎說(신교설)과 貴族(귀족)의 高雅氣(고아기)와 武士(무사)의 豪俠風(호협풍)과 富者(부자)의 放恣行(방자행)은 都是(도시) 驟雨(취우)를 經(경)한 輕塵(경진)이 되얏고 『勞働(노동)치 아니하면 食(식)치 못한다』 『勞働(노동)을 하지 아니하는 者(자)는 政治上(정치상) 又(우)는 社會上(사회상) 人權(인권)을 附興(부흥)치 아니한다』 『人生(인생)은 平等(평등)이오 그 動作(동작)은 自由(자유)이라. 貧富(빈부)와 貴賤(귀천)이 有(유)치 아니하며 專橫(전횡)과 壓迫(압박)이 可(가)치 아니하다』하는 新文句(신문구)의 新事實(신사실)만 列記(열기)하얏나니 이와갓치 歷史上(역사상)으로 新紀元(신기원)을 作(작)한 者(자)는 레닌이라. 故(고)로 露西亞(노서아)의 過去(과거) 歷史(역사)는 레닌을 産(산)하얏스며 레닌은 新歷史(신역사)를 作(작)하얏도다.

레닌은 河流(하류)에 淸洗(청세)한 심필쓰크의 農村(농촌)의 和睦(화목)한 家庭(가정)에 生(생)하야 父母兄弟(부모형제)의 땃々한 사랑 가온대 幸福(행복)의 成長(성장)을 爲(위)하다가 그 兄(형)의 死刑(사형)에 心(심)을 痛(통)하고 志(지)를 決(결)하얏스며 學校(학교)를 出(출)하야 辯護士(변호사)의 職(직)을 暫間(잠간)동안 擧(거)하다가 官僚式(관료식)의 法庭(법정)이 彼(피)의 平民的(평민적) 良心(양심)을 刺戟(자극)한지라.

斷然(단연)코 弊履(폐리)와 如(여)히 辯護士(변호사)의 職(직)을 廢(폐)하얏스며 『출랴포후』가 全露西亞(전노서아)가 牢獄(뇌옥)으로 化(화)하야 自由(자유)의 모든 同志(동지)는 窒息(질식)하얏슬 時(시)에 『주아』에게 反逆(반역)이 旗(기)를 擧(거)한 歷史(역사)를 讀(독)하고 『此(차) 遺業(유업)은 我等(아등)의 것이라. 아니라. 我等(아등)뿐의 것이라. 출랴포후는 實際(실제)에 在(재)하야 폴셱키오 共産主義(공산주의)이라. 我等(아등)의 任務(임무)는 출랴포후의 始作(시작)한 事(사)를 續績(속적)함에 在(재)하다』하고 비로소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의 革命家(혁명가)가 됨을 決斷(결단)하얏스며

포필리쓰르 卽(즉) 國粹主義(국수주의)와 막쓰主義(주의)가 서로 對立(대립)하야 大勢(대세)의 趨向(추향)이 濛濃(몽농)한 時代(시대)에 막쓰主義(주의)에 加擔(가담)하야 舊露西亞(구노서아)의 舊式(구식) 革命思想(혁명사상)에 一大(일대) 變革(변혁)을 與(여)하얏스며 막쓰社會主義者(사회주의자)가 取(취)할 方法(방법)과 手段(수단)이며 經綸(경륜)과 劃策(획책)에 窮(궁)하야 한갓 日暮途遠(일모도원)을 呌(규)하고 氣盡脉盡(기진맥진)한 時(시)에 레닌은 火花(화화)(이쓰클라)라는 雜誌(잡지)를 刊行(간행)하야 『무엇으로부터 着手(착수)할가』하는 論文(논문) 中(중)에 露國共産黨(노국공산당)의 綱領(강령)과 戰術(전술)의 基礎(기초)를 述(술)하얏스며 更(경)히 論文(논문)을 敷衍(부연)하야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小冊子(소책자)를 公揭(공게)하야 露西亞(노서아) 社會主義運動(사회주의운동)의 池中(지중)에 巨石(거석)을 投(투)하얏도다.

그리하고 先輩(선배) 社會主義者(사회주의자) 풀레하노의 敬歎(경탄)을 受(수)하얏더니 旣而(기이)오 폴섹키와 멘섹키 間(간)에 衝突(충돌)이 生(생)하야 □□二分(이분)하□ 됨에 풀레하노는 極端(극단)으로 레닌을 排斥(배척)하얏스며 甚至於(심지어) 레닌은 自派(자파)와 分離(분리)하는 그 瞬間(순간)에 死(사)한 者(자)이라고까지 嘲笑(조소)하얏나니 此時(차시) 례닌의 形狀(형상)은 實(실)로 形言(형언)치 못할 窮境(궁경)에 陷(함)하얏더라.

그러하나 레닌은 그와갓치 窮境(궁경)에 陷(함)하얏스되 오히려 泰然(태연)하야 反(반)히 폴레라노를 嘲笑(조소)하야 『最後(최후)의 웃는 者(자)이라야 善(선)히 웃는 者(자)라』하얏스며 獨逸(독일)의 老社會主義者(노사회주의자) 베벨은 此(차) 分裂(분열)에 對(대)하야 레닌에게 書(서)를 送(송)하얏스되 『小兒(소아)들이여 和解(화해)하는 것이 엇더하뇨. 此(차) 베벨이 諸君(제군)과 멘섹키와의 仲裁(중재)를 提議(제의)하노니 此(차) 分裂(분열)은 大體(대체) 무삼 일이뇨. 諸君(제군)의 主張(주장)하는 바를 우리의 仲裁々判所(중재재판소)에 一任(일임)하지 아니하겟는가…………』하얏도다.

레닌은 저 先輩(선배) 베벨의 仲裁(중재)에 耳(이)를 傾(경)치 아니하고 斷然(단연)히 拒絶(거절)하얏나니 萬國社會主義運動(만국사회주의운동)의 先輩(선배)인 베벨에게 對(대)한 此(차) 傲慢(오만)한 態度(태도)는 甚(심)히 彼(피)를 驚駭(경해)케 한지라. 玆(자)에 至(지)하야 勞働者(노동자)의 天稟(천품)의 指導者(지도자)라 하야 레닌을 敬愛(경애)하던 베벨도 레닌이 풀레하노에게 反對(반대)한 事(사)를 甚(심)히 非難(비난)하얏도다.


현대문

니콜라이 레닌은 어떤 사람인가(60)

20. 결론(계속)


그런데 러시아주의가 과연 역사적 진화로, 지리적 변천으로 특수한 문명을 건설하여 신사회를, 신천지를 개척할지 않을지 알 수 없지만 세계의 대세는 그 사실을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새 러시아에 새 사회를 건설하는 자는 그 누구인가. 굳은 의지의 꺾이지 않는 철혈남아 레닌 그 사람이다.

레닌이 러시아 역사를 새로 열었는가? 러시아 역사가 레닌을 낳았는가? 전제군주와 관료정치와 자본의 탐욕이 극도로 억압하고 극도로 날뛰는 것은 러시아인으로 하여금 공포를 낳게 하였고 공포는 극단의 사상을 끌어왔으며 극단의 사상은 철저한 인물을 낳았다. 그러므로 철저한 인물 레닌이 나온 것은 러시아 역사가 낳은 것이요 러시아 역사는 이제 내용과 조직이며 문장과 설명이 아주 바뀌었다.

‘차르’의 문장(紋章)과 승려의 교리와 귀족의 우아함과 무사의 호걸스러움과 부자의 방자함은 도무지 소나기가 지나간 뒤 티끌이 되었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인권을 주어 일으키지 않는다’ ‘인생은 평등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이다. 빈부와 귀천이 있지 않고 전횡과 압박이 허락되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구절의 새로운 사실만 열거하였으니 이처럼 역사상으로 신기원을 만든 사람은 레닌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과거 역사는 레닌을 낳았으며 레닌은 새 역사를 만들었다.

레닌은 볼가 강물에 맑게 씻긴 심비르스크 농촌의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형제의 따뜻한 사랑 가운데 행복하게 성장하다가 형이 사형당하여 마음의 고통을 겪은 뒤 뜻을 굳혔다. 학교를 나와 변호사의 직무를 잠깐 동안 하다가 관료식 법정이 그의 평민적 양심을 자극하였다. 헌신짝처럼 변호사 자리를 단호하게 버렸으며 전 러시아가 감옥으로 변하여 자유의 모든 동지들이 질식하였을 때 안드레이 젤랴보프가 ‘차르’에게 반역의 깃발을 들었던 역사를 읽고 ‘이 유업은 우리들의 것이다. 아니다. 우리들만의 것이다. 젤랴보프는 실제에 있어서 볼셰비키 공산주의이다. 우리들의 임무는 젤랴보프가 시작한 일을 이어가는데 있다’라고 비로소 공산주의자 혁명가가 될 것을 결단하였다.

인민주의 즉 국수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서로 대립하여 대세의 향방이 흐릿한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에 가담하여 옛 러시아의 구식 혁명사상에 일대 변혁을 주었다. 마르크스 사회주의자가 선택할 방법과 수단이며 경륜과 계획이 모자라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없다고 외치며 기운이 빠졌을 때 레닌은 불꽃(이스크라)이라는 잡지를 간행하여 ‘무엇으로부터 착수할까’라는 논문 가운데 러시아 공산당의 강령과 전술의 기초를 서술하였다. 다시 논문을 보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책자를 출간하여 러시아 사회주의운동의 호수에 거대한 돌을 던졌다.

그리고 선배 사회주의자 플레하노프의 경탄을 받았더니 이윽고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둘로 갈라지게 되자 플레하노프는 레닌을 극단적으로 배척하였다. 심지어 레닌은 자기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그 순간에 죽은 사람이라고까지 조소하였으니 이 때 레닌의 모습은 실로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딱한 처지에 빠졌다. 그러나 레닌은 그와 같은 처지에 빠졌으나 오히려 태연하게 거꾸로 플레하노프를 비웃으며 ‘최후에 웃는 사람이라야 진짜 웃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독일의 노 사회주의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베벨은 이 분열에 대하여 레닌에게 편지를 보내 ‘어린아이들이여 화해하는 것이 어떤가. 이 분열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 베벨이 여러분과 멘셰비키의 중재를 제의한다. 여러분이 주장하는 바를 우리의 중재재판소에 맡기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레닌은 선배 베벨의 중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으니 만국사회주의운동의 선배인 베벨에게 대한 이 오만한 태도는 그를 크게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러 타고난 품성을 갖춘 노동자의 지도자라고 하여 레닌을 아끼던 베벨도 레닌이 플레하노프에게 반대한 일을 크게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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