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백두산 천지 이상한 소리가…’ 민족혼 깨운 르포 17회

정경준기자 입력 2020-07-04 11:40수정 2020-07-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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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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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21년 8월 29일자에 실린 백두산 천지의 전경. 사진반 야마하나 기자가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잠시 맑개 갠 틈을 타 촬영했다. 당시 기사는 ‘천지 속에서 사진을 박은 일은 본사 사진반으로 백두산이 생긴 이후 처음’이라고 썼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용이한 통치를 위해 우리 머릿속에서 ‘민족’이란 단어를 지워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부정하고,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다 같은 황국신민이라는 일시동인(一視同仁) 사상을 주입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이에 맞서 1920년 창간 첫 사업으로 단군영정을 현상공모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단군 탄생 성지인 백두산에 기자들을 특파해 민족의 영산(靈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1921년 8월 함경남도청이 백두산 탐험 등산대를 조직하자 동아일보는 사회부 기자 민태원과 사진반 야마하나를 보냅니다. 소설가이기도 했던 우보 민태원은 훗날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수필 ‘청춘예찬’을 발표한 인물입니다. 동아일보 창간 동인인 야마하나는 일본인이었지만 한복을 즐겨 입고, 좋은 사진만을 위해 동분서주한 1세대 사진기자였습니다.

이들은 8월 8일 함흥을 출발해 홍원, 북청, 혜산진을 거쳐 16일 드디어 백두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민태원은 그날그날의 여정을 짧게 보도한 데 이어 귀환한 뒤 21일자부터 르포 ‘백두산 행’을 연재했습니다. 야마하나도 매 기사마다 ‘백두산 탐승 화보’라는 이름으로 매 기사마다 귀한 사진을 곁들였습니다. 동아일보는 17회나 되는 이 시리즈를 모두 1면에 배치해 백두산 탐험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백두산 천지 동쪽에 서서 서북쪽을 바라본 광경.
특히 11년 전 국권을 잃은 날인 8월 29일자에는 1면 시리즈 외에 3면 상단에 백두산 천지를 촬영한 대형 파노라마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 사진에는 천지의 경관을 생생하게 묘사한 긴 사진설명 겸 기사가 붙었는데 성산(聖山)에 걸맞게 신비로움을 강조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신비 중의 신비로, 영구한 세월 깊이 감춰져 있던 곳이니… 어떤 때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며 천둥벼락과 우박, 눈비를 부르는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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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아래에 군집하는 들쭉. 산포도와 비슷한 모양의 들쭉으로 만든 들쭉술은 북한의 대표적인 술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만찬주로 쓰였다.
1712년 조선 숙종 때 백두산에 세운 청나라와의 국경선을 표시한 비석. 백두산을 만주족의 발상지라 하는 중국은 백두산을 창바이(장백)산이라 부른다.
민태원은 ‘백두산 행’에서 역설적으로 평범함, 따뜻함에서 백두산의 위대함을 실감했다고 했습니다. 9000척(약 2727m)을 오르는 길이 극히 어려울 것이라 겁먹었는데 모나지 않고 원만해 종일 걸어도 피로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천지의 물도 백두산에 닿기 전 신무치나 무두봉의 물이 골수를 찌르는 듯 차가웠던 것과 달리 복중(伏中)의 수돗물 같았다고 말이죠. 범접하기 어려운 위대함이 아니라 민족을 보듬어 안는 위대한 산임을 강조한 겁니다. 그는 천지를 둘러싼 외륜산 중 하나인 대각봉의 ‘대한독립군 기념’ 말뚝, 조선 숙종 때 청나라와의 국경을 짓기 위해 세운 백두산정계비 등을 다루며 독자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민태원의 해박한 지식과 반듯한 의식도 곳곳에 드러납니다. 함남 홍원 장날, 저자에 모인 사람의 8할이 부지런한 북선(北鮮)의 여인들인 것을 보고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용모의 단정함을 뜻하는 것만은 아닐 거라는 단상을 적었습니다. 또 포태동과 허항령 사이 임연수 명산지에서는 임연수라는 사람이 이 생선을 처음 발견했다는 데서 임연수가 유래했고, 명태 역시 함북 명천에 살던 태(太) 씨의 어획이 시초여서 ‘명천 태 씨’에서 비롯됐다고 전했습니다.

1921년 8월 27일 경성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열린 백두산강연회에 운집한 청중들. 국어학자이자 사학자인 권덕규가 우리 민족에게 백두산이 어떤 의미인가를 강연한 뒤 민태원 기자가 백두산 탐사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후에는 사진기자 야마하나가 찍은 20여 장의 슬라이드를 상영해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동아일보는 지면에 그치지 않고 ‘백두산 행’ 연재가 한창이던 8월 27일 밤 종로 중앙청년회관(지금의 YMCA회관)에서 백두산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강사로 초청한 국어학자 겸 역사학자 권덕규는 “단군이 탄생한 태백산이 곧 백두산이며, 이곳을 근원으로 한 조선민족은 영특한 민족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태산도 실상은 백두산 줄기가 뻗어내려 산둥반도와 태산이 된 것이다”라고 해 자부심을 한껏 고취했습니다. 수천 청중은 민태원의 경험담에 이어 상영된 20여 장 환등(幻燈‧슬라이드)으로 백두산의 실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5년 뒤 1926년에는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覲參‧존경하는 이를 찾아가 뵘)’을 89회 연재했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원문
◇千古(천고)의 神秘境(신비경)인 天池(천지)의 全景(전경)◇
본사 특파 사진반의 고심 촬영한 사진

텬디(天池‧천지)는 혹 룡왕담(龍王潭‧용왕담)이라고 일컷는 백두산 상의 큰 못이라. 신비 중의 신비로 쳔고에 깁히 감추어 있던 곳이니 그 깁히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측량할 수 업거니와 주위가 사십 리요, 그 외륜산(外輪山‧외륜산)의 주위는 실로 팔십 리가 된다고 한다.

쳔인졀벽이 사방에 둘니여서 동편 쪽의 길목 하나만 막으면 나는 새도 오히려 그 안에 들기를 두려워할 것이며, 텬지의 물을 마시고 사는 백두산 상의 신령한 사슴들도 그 물을 마시랴면 일은 아츰에 떼를 지여 동편 쪽 길목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사람이 만일 청명한 날에 백두산을 올으면 절정에 발을 올려노코 눈을 텬지에 옴길 때에 안계가 황홀하고 가슴이 두근거리여 얼마 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맑고 조용한 텬지의 물은 구름의 형태와 일광의 반사로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업는 연연한 각종의 풀은 빗이 찬란하게 빗나며, 주위로 일쳔삼사백 척이나 되는 병풍 가치 둘닌 외륜산의 채색 석벽이 걱구로 비취여 오색이 령농한 모양은 그저 거룩하고 놀나울 뿐이다.

그러나 한번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 혹 쪽빗 가치, 혹 먹빗 가치 변화가 무궁하며 안개가 둘니고 구름이 덥히여 형톄를 감추는 일도 종종할 뿐 아니라 엇더한 때에는 그 안으로 이상한 소래가 들니며 뇌성벽력과 우박 눈비를 부르는 일도 종종하다고 한다.

公開(공개)된 聖山(성산)의 神祕(신비)
권덕규 씨의 백두산 력사 강연
민태원 씨의 실사한 경치 셜명
大盛況(대성황)의 本社(본사) 主催(주최) 白頭山講演會(백두산 강연회)


본사 주최의 백두산 강연회는 예뎡과 가치 재작일 오후 여달시부터 종로 중앙청년회관에 열리엇는대 원래 조선민족에게 무한한 감흥을 일으키는 강연회이라 정각 전부터 물밀 듯 몰녀오는 군중이 뒤를 이어 순식간에 회장 안은 정결한 흰옷 입은 사람으로 만원이 되고 장내에 드러오지 못하는 수천의 군즁은 다든 문밧게 몰녀서서 도라가지 아니함으로 그 혼잡은 실로 형언할 수 업섯다.

먼저 본사 주간 장덕수(張德秀‧장덕수) 씨가 개회의 말을 베푼 후 력사에 조예가 깁흔 권덕규(權悳奎‧권덕규) 씨가 조선력사와 백두산(朝鮮歷史와 白頭山‧조선역사와 백두산)이란 문뎨로 그의 학식을 기우려 열변을 토하게 되엿다. 강당이 떠나갈 듯한 박수 소래가 끗치매 수쳔의 군중은 일시에 감뎐된 것 가치 직히는 줄 모르게 침묵을 직히고 오즉 더움을 못 익이어 부치는 수백의 부채만 흰 나비와 가치 번득일 뿐이엇다.

권덕규 씨는 몬저 엇더한 민족과 개인을 물론하고 모다 위대한 강산을 중심으로 이러난 실례를 들어 조선민족도 백두산 가튼 웅대한 산 아래에서 근원이 발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 조선인에게 너희는 영특한 민족이라는 교훈을 암시한 것이라 하매 청중 속에서는 박수가 이러낫다.

그 다음 단군이 탄생한 태백산이 백두산이란 말을 명쾌하게 증명한 후 은근히 우리 고대의 광영스러운 력사를 들어 무한헌 감흥을 일으키고 동양의 모든 강한 나라가 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야 이러난 말로 백두산의 더욱 거록함을 말하다가 문득 강론의 칼날을 돌리어 중국 사람들이 태산(泰山‧태산)으로 신령스러운 산의 대표를 삼고자 하나 실상 백두산 쥴기가 내려가다가 산동반도가 되어 태산이라는 산을 이루엇다는 말로 공자가 태산 가튼 적은 산에 올나서서 텬하를 적게 알앗다는 말을 하야 우리 민족이 디리뎍으로 특수한 디위에 잇슴을 말하야 흥미가 도도한 중에 말을 맛치고

그 다음 민태원(閔泰援‧민태원) 씨가 백두산을 실디 탐사한 경험담을 시작하야 혹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수림이 수백 리를 계속한 말과 놉흔 산의 긔후 관계로 평디에서는 금석을 태일 듯이 더웁든 팔월 초순이 일란풍화하고 백화란만하더란 말을 하야 듯는 사람에게 련화세게 가튼 선경을 련상케 하고 끗흐로 백두산 우에 잇는 텬지(天池‧천지)의 거륵한 경치를 말하야 일천삼백 척 아래에 보히는 팔십 리 주위의 못에 빗치는 모든 긔묘한 경치를 설명한 후

천변만화의 신성한 조화가 시시각각으로 이러나는 말로 끗을 마치고 이십여 장의 환등으로 백두산의 장쾌한 실경을 구경식히다가 끗흐로 텬지의 젼경이 나오매 관중 편에서 박수가 퍼부어 이러낫섯다.

이리하야 거륵하고 장쾌한 백두산 강연회는 전고에 업는 성황 속에서 마치엇스나 다만 본사원 일동이 한업시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는 장소의 관계로 다수한 관람자가 문밧게 서서 장시간 동안을 기다린 것이라. 관후한 독자는 그것이 본사의 허물로만 그리함이 아닌 것을 량해할 줄을 밋는 바이라.

현대문
◇ 영구한 세월 신비의 경지인 천지의 전경 ◇
본사가 특파한 사진반이 고심해 촬영한 사진

천지는 혹 용왕담이라고 일컫는 백두산의 큰 연못이다. 신비 중의 신비로, 영구한 세월 동안 깊이 감춰져 있던 곳이니, 그 깊이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측량도 할 수 없거니와 둘레는 40리, 천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둘레는 실로 80리나 된다고 한다.

천 길 낭떠러지가 사방을 둘러 동쪽 길목 하나만 막으면 나는 새도 그 안에 들어오기를 꺼려하며, 천지의 물을 마시고 사는 백두산의 신령한 사슴들도 그 물을 마시려면 이른 아침에 떼를 지어 동쪽 길목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만약 사람이 청명한 날 백두산에 올라 꼭대기에 발을 올려놓고 눈을 천지로 옮기면 시야가 황홀하고 가슴이 두근거려 얼마 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맑고 조용한 천지의 물은 구름 모양과 햇빛을 반사해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곱고도 어여쁜 각종 풀은 찬란하게 빛나며, 주위로 1300~1400척이나 되는 병풍 같은 외륜산의 색칠한 듯한 석벽이 거꾸로 물에 비쳐 오색영롱한 모양은 그저 거룩하고 놀라운 뿐이다.

그러나 한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혹은 쪽빛처럼, 혹은 검은색처럼 끝없이 변하며, 안개가 끼고 구름이 덮여 형체를 감추는 일도 종종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천지 안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며 천둥벼락과 우박, 눈비를 부르는 일도 왕왕 있다고 한다.

공개된 성산의 신비
권덕규 씨의 백두산 역사 강연
민태원 씨의 실사한 경치 설명
대성황을 이룬 본사 주최 백두산 강연회


본사가 주최한 백두산 강연회는 예정과 같이 그저께 오후 8시부터 경성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열렸는데 원래 조선민족에게 무한한 감흥을 일으키는 강연회라 정각 전부터 물밀 듯 몰려오는 군중이 뒤를 이어 순식간에 강연장 안은 정결하게 흰옷 입은 조선민족으로 만원이 되고 장내에 들어오지 못한 수천 군중은 닫은 문밖에 서서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그 혼잡은 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먼저 본사 주간 장덕수 씨가 개회사를 한 뒤 역사에 조예가 깊은 권덕규 씨가 ‘조선역사와 백두산’이란 주제로 그의 학식을 총동원해 열변을 토했다. 강당이 떠나갈 듯한 박수소리가 그치자 수천 군중은 일시에 전기에 감전된 듯 자신도 모르게 침묵을 지켰고 오직 더위를 못 이겨 부치는 수백의 부채만 흰 나비처럼 번득일 뿐이었다.

권덕규 씨는 먼저 어떤 민족이나 개인이나 가리지 않고 모두 위대한 강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실례를 들어 조선민족도 백두산 같은 웅대한 산 아래에서 근원이 생겨난 것을 보면 하늘이 우리 조선인에게 “너희는 영특한 민족이다”라고 교훈을 암시한 것이라고 말했고, 청중 속에서는 박수가 일어났다.

그는 다음으로 단군이 탄생한 태백산이 백두산이라는 말을 명쾌하게 증명한 뒤 은근이 우리 고대의 빛나는 역사를 들어 무한한 감흥을 일으키고 동양의 모든 나라가 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말로 백두산의 거룩함을 강조했다. 그러다 문득 강론의 방향을 돌려 공자가 ‘태산에 올라서서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登泰山而小天下‧등태산이소천하’고 했을 정도로 중국인들은 태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삼지만, 실상 백두산 줄기가 뻗어내려 산둥반도가 되어 태산을 이뤘다는 말로 우리 민족이 지리적으로 특수한 지위에 있음을 드러내 흥미가 도도한 가운데 말을 마쳤다.

이어 민태원 씨가 백두산을 실지 탐사한 경험담을 시작해 하늘을 찌를 듯한 수림이 수백 리에 이르더라는 얘기, 평지에서는 쇠붙이와 돌도 태울 듯이 덥던 8월 초순이었지만 높은 산에서는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부드러워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얘기를 해 청중에게 불국정토와 같은 선경을 연상케 했다. 그는 또 백두산 정상에 있는 천지의 거룩하고도 기묘한 경치에 대해 “1300척 아래, 둘레 80리의 큰 못에 시시각각 천변만화의 신성한 조화가 일어나더라”고 묘사하며 강연을 마쳤다.

끝으로 20여 장의 슬라이드로 백두산의 장쾌한 실제 모습을 구경시켰는데, 마지막으로 천지의 전경이 나오자 관중들은 박수를 퍼부으며 일어났다.

이렇게 거룩하고 장쾌한 백두산 강연회는 전에 없는 성황 속에서 마쳤다. 다만 우리 동아일보사 일동이 한없는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수많은 관람객들이 문밖에 서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너그럽고 후덕한 독자 여러분은 그것이 본사의 허물 탓만은 아닌 것을 양해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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