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 & 칠장사 대웅전, 보물됐다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29일 1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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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궁궐 밖 영전인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水原 華寧殿 雲漢閣·複道閣·移安廳)’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경기 수원시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35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칠장사 대웅전(七長寺 大雄殿)’을 ‘안성 칠장사 대웅전(安城 七長寺 大雄殿)’으로 이름을 바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36호로 지정했다.

사적 제115호로 지정된 ‘수원 화령전’은 화성 축조(1793~1796)를 주도했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승하한 뒤 어진을 모실 영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1801년 건립됐다. 전주의 경기전과 함께 궁궐 밖에 영전을 모신 드문 사례다. 정조 이후 모든 왕이 직접 이곳을 방문해 제향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높다.

운한각, 복도각, 이안청은 수원 화령전에 위치한 중심 건축군으로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운한각은 화령전의 중심인 정전(正殿)이고, 운한각 옆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건물이 이안청, 두 건물을 잇는 통로가 복도각이다.

이안청은 불가피한 상황에 어진을 임시 봉안하는 곳이다. 정자각 정전에 이안청이 별도로 있던 조선 초기 영전과는 달리 정전(운한각)과 이안청을 복도각으로 연결한 건물 구조는 조선 후기 변화된 새로운 형식의 영전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운한각(정전)의 평면구성은 중앙에 어진을 봉안하는 합자(閤子)를 두고 좌우에 온돌이 있는 협실을 뒀다. 여러 물품을 보관했던 퇴칸을 배치해 주칸의 크기를 달리했다. 기둥의 가공이나 창호, 창틀, 지붕마루, 기단 석축 가공 등 세부적으로도 격식이 돋보이는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승정원일기’와 ‘순조실록’에 건물 준공과정과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에 제사 절차와 건물 관리 규범, 각 건물에 보관한 기물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전해온다.

‘수원 화령전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은 이후 수원의 근대 도시 발전 과정에서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1801년 창건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건물의 역사적 기록도 잘 남아 있다. 19세기 궁궐건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인의 동원과 기술, 기법이 건물 각 세부에 충분히 적용되어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

‘안성 칠장사 대웅전’은 1790년 중창되고 1828년 이건된 건물로서, 경기도 권역에 조선 후기 사찰 중심 불전의 건축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전체 평면은 정면 3칸, 옆면 3칸으로 화려한 다포식 공포를 전후면에만 두고, 구조는 짓고 관리하기 쉬운 2고주 5량의 맞배집으로 처리했다. 전반적으로 교세가 위축됐던 조선 후기에 지어진 전형적 불전 건축 모습이다.

대웅전은 공포 구성과 더불어, 덩굴무늬를 그린 초각(草刻), 내부의 가구(架構) 구성과 불단의 조성, 소란반자와 연등천장, 닫집을 함께 사용한 천장의 처리, 대들보와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휘어진 나무를 활용한 점, 사방의 벽면에 둔 창호의 배열 등 18~19세기 불전 건축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고려 전기 이래로 이어온 유래 깊은 사찰 건축의 전통에서 비롯한 특수한 모습도 있다. 대웅전 전면 석축과 계단, 초석 에서는 수준 높은 석공작의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우물천장 널판에는 화초 모양을 도드라지게 그린 금색 고분단청이 일부 남아 있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사례가 적어 가치가 크다. 고분단청은 흰색 안료인 호분으로 여러 번 칠해 도드라지게 한 다음 채색하여 입체감을 줬다.

문화재자료 제24호 칠장사는 1014년 혜소국사가 중창했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대웅전에는 1685년 만들어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3호 안성 칠장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1628년 그려진 국보 제296호 칠장사오불회괘불탱, 1710년에 그려진 보물 제1256호 칠장사삼불회괘불탱이 전한다. 칠장사 경내에 보물 제488호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등 고려 불교 유적 등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역사를 전하는 사적기(寺籍記)와 현판도 남아있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주변 시설 등을 적극적으로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 ‘나주 금성관(羅州 錦城館)’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나주 금성관은 조선 시대 전패와 궐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던 객사다. 객사란 조선 시대 지방 관아의 하나로 고을마다 두며 궐패를 모셔 두고 초하루와 보름마다 망궐례를 올리며, 지방에 오는 관원을 접대하는 공간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목조 가구와 공포형식은 1775년과 1885년 중수 당시 기법을 보여주며 각종 기록으로 보아 전체규모와 골격은 1617년 중수 당시의 형태로 추정된다.

금성관은 주심포계 양식의 요소를 채용한 익공계 공포 구성이 돋보인다. 월대와 건물의 외관 그리고 내부 천장 등을 일반적인 객사와 달리 궁궐의 정전과 유사하게 구성한 점은 금성관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금성관 정청은 조선 시대 객사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크고 팔작지붕을 하고 있어 일반 맞배지붕의 정청(正廳; 객사 건물 가운데 중심 건물)과 대비돼 희귀성이 있다. 인근에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이 조선 시대 일반 지방향교 대성전의 맞배지붕과 달리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점에서 지역 특수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금성관은 무엇보다 지역성에 주목해 지역 대표 역사문화유산이라는 점,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오랫동안 나주군청과 시청으로 사용되면서도 전반적으로 원형을 유지하여 온 역사적 건축물로서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금성관은 나주 읍치(邑治)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며, 다른 객사와 뚜렷한 차별성을 띤 격조 높은 건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나주 금성관에 대하여 30일간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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