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혜택은 순수예술 명맥을 잇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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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병역특례제 축소 움직임에 대한 3인 대담

현재 세계의 예술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콩쿠르 입상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김선욱, 발레리노 김기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 대표적이다. 동아일보DB
현재 세계의 예술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콩쿠르 입상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김선욱, 발레리노 김기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 대표적이다. 동아일보DB
《 피아니스트 조성진, 김선욱, 선우예권, 한국인 최초의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 한국을 빛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콩쿠르 입상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것. 최근 병역 면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는 태스크포스를 꾸려 1973년 도입된 병역 특례 제도 전반을 점검해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병무청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7월까지 병역 면제를 받은 예술인은 280명. 연평균 28명이다. 예술계에서는 병역 면제가 순수예술의 명맥을 잇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축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76), 한국무용가 조흥동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77), 해금연주가 강은일 단국대 교수(51)가 9월 21일 서울 서초구 모차르트홀에서 예술인 병역 면제 정책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
 
한국무용가인 조흥동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해금연주가 강은일 단국대 교수(오른쪽부터)는 “한국의 예술 발전을 이끌어갈 탁월한 소수를 위한 병역 면제 혜택은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무용가인 조흥동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피아니스트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해금연주가 강은일 단국대 교수(오른쪽부터)는 “한국의 예술 발전을 이끌어갈 탁월한 소수를 위한 병역 면제 혜택은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신수정=(제자인) 조성진이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서 열리는) 하마마쓰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15세 때 역대 최연소 우승을 하며 병역 면제를 받은 후 심리적으로 크게 안정돼 연주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병역 면제를 받지 않았다면 쇼팽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오늘날의 조성진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해마다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콩쿠르가 줄어 현재 하마마쓰 콩쿠르는 제외됐어요. 이미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콩쿠르의 기회도 크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조흥동=미세한 근육까지 매일 단련하는 무용수는 군대를 다녀오면 몸이 완전히 달라져 제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뛰어난 소수만 병역 면제를 받는데 이마저 사라진다면 지금도 남성 무용수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무용계는 고사할 겁니다. 실제로 탄광촌 소년이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가는 내용을 그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을 하는데 지원자는 많았지만 정작 발레를 하는 남자아이가 드물어 기획사가 캐스팅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강은일=전통음악이나 한국무용은 그 특성상 국제콩쿠르는 없고 국내 대회만 있어요. 심사의 공정성 등 보완할 점이 있다면 개선해 나가야지, 혜택을 아예 없애는 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습니다. 병역 면제를 받는 예술인들이 연평균 30명 안팎입니다. 이들이 병역보다는 예술로 기여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수정=악기 연주자 역시 손가락 끝 근육까지 섬세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굳어버려요. 탁월한 예술가가 기량을 더 키울 수 있게 뒷받침해야 하는데, 거꾸로 이들을 주저앉히는 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에요.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전문성을 갖고 정교하게 정책을 결정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면밀히 고려해주길 바랍니다.

▽조흥동
=일각에서는 입상 성적별로 점수를 부여해 일정 점수를 넘으면 병역을 면제하는 포인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러나 운동선수는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 자체가 목표인 반면 예술가는 무대에 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콩쿠르는 그 과정일 뿐입니다. 포인트제를 실시하면 콩쿠르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강은일=장래가 불투명하고 취업할 곳이 거의 없어 전통음악을 하는 이들이 큰 폭으로 줄고 있어요.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장르가 적지 않습니다. 병역 면제마저 사라진다면 전통 음악은 맥이 끊어질 겁니다. 형평성이라는 이름 아래 장르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곤란합니다. 진정한 형평성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살폈으면 좋겠어요.

▽신수정=국내에서 주최하는 국제콩쿠르를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국내에서만 공부한 예술가가 세계무대를 휩쓰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 예술가의 수준은 세계적입니다. 국내에서 주최하는 대회 가운데 역사와 권위를 지닌 대회는 병역 면제 혜택을 유지해야 합니다. 혜택이 유지되면 더 많은 예술가들에게 자극을 주고, 도전하게 만들어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조흥동=예술이 국민 정서를 고양시키고 나라의 품위를 높인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를 존중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의 삶도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예술인 병역특례제#병역 면제#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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