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역사서가 빠뜨린 여성의 기록을 찾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1일 03시 00분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케르스틴 뤼커·우테 댄셸 지음/장혜경 옮김/512쪽·1만7800원·어크로스

혁명, 전쟁, 화합….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이끈 인물들을 떠올려 보자. 그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머릿속을 헤집어 여성을 찾으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 대부분이 남성이니까! 이번엔 아는 이들을 남녀 그룹으로 나눈 뒤 따져보자.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난가? 여성은 남성만큼의 업적을 이루지 못할 열등한 동물인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작가 케르스틴 뤼커와 교사 우테 댄셸은 이 지점에 의문을 품었다. ‘여성과 남성은 결코 다르지 않은데 역사서에는 왜 여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까.’ 그리고 세계사를 다시 써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는 역사 속 여성의 자리를 치열하게 복원한 ‘역사 바로잡기’다.

책은 지각 있는 인류가 탄생한 시점부터 최근까지 역사 속 여성들의 행적을 되짚어낸다. 구석기시대 전시 대부분은 ‘사냥하는 남성과 밥 짓는 여성’을 전제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책에 따르면 진주와 남성이, 무기와 여성이 함께 출토된 사례가 적지 않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범한 인물도 늘 존재해 왔다. 뛰어난 치적으로 ‘대제’ 칭호를 받은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하지만 그를 설득해 콘스탄티노플을 지킬 것을 관철한 이는 황후 테오도라였다. 허나 역사는 테오도라를 ‘무희 출신 신데렐라’로 그렸다.

아예 여성을 남성으로 둔갑한 사례도 있다. 초기 기독교 시절 이베리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 니노가 대표적이다. “여성이 비범한 일을 하면 올바르지 않다”는 편견과 혐오가 여성을 역사에서 통째로 들어냈다.

책을 덮고 ‘말 잘 듣는 여자아이’에 대한 강박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간 절름발이 역사에 길들여져 탐욕스럽고 불손한 여성이 되지 않으려 알게 모르게 애썼는지 모르겠다. 미투 운동에 더해 페미니즘 독서로 예전보다 마음이 당당해졌다. 역사와 여성에 관심이 있다면 편하게 읽기에 좋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케르스틴 뤼커#우테 댄셸#장혜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