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향]조사 ‘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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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출판사 대표 A 씨와 처음 만난 자리. 회사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 그것부터 물었다.

‘○와○.’

세 음절의 낯선 순우리말 또는 사투리 단어이리라 생각했는데 답변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을 때 첫 책을 내겠다는 좋은 필자는 잡았지만 책을 찍어낼 자금이 부족했다. 대출도 여의치 않아 막막해 하던 중에 대학친구 B가 선뜻 2000만 원을 건넸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주는 거’라면서.”

첫 책은 크게 성공했고 A 씨는 다시 만난 B 씨에게 받은 돈에 1000만 원을 더 얹어 웃으며 돌려줬다. A 씨가 그때 지은 출판사 이름은 B 씨의 성 ‘이’와 자신의 성 ‘우’를 묶어 만든 것이다. B 씨의 성을 앞에 놓고 자신의 성은 조사 ‘와’ 뒤에 놓았다. 이와우 출판사 우재오 대표는 그에 이어진 사연을 들려줬다.

“회사 이름 새긴 명함을 돌리며 다니다 보니 ‘일본어냐’고 묻는 이가 여럿이었다. 찾아보니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어 ‘いわう’의 의미가 ‘행운을 기원하다’더라. 하긴, 운 좋은 덕에 꾸려가고 있는 일이니까. 정말 딱 맞는 회사 이름이다 싶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생전에 가끔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구든 친구가 ‘돈 빌려 달라’고 하거든 돌려받을 생각 말고 줄 수 있는 만큼 다 주거라.”


아버지가 예상하지 못하신 건 당신의 아들이 그런 부탁 해올 친구 하나 없는 인간으로 성장하리라는 사실이었다.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건 안다. 조사 ‘와’의 의미가 무겁게 어깨를 눌렀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조사 와#회사 이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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