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가야사 연구 활성화 기대” “섣부른 복원 부작용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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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가야사 복원’ 지시에 학계 두갈래 표정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史) 연구와 복원을 지시한 것에 대해 학계에서는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유적 복원 속도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학계의 가야사 연구 현황과 이후 방향을 알아본다.

○ 호남 동부도 가야 영역으로 밝혀져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야사는 연구의 변방이었다. 고대 한반도의 가라(加羅·가야)국을 일본이 정복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 내용 등을 근거로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1977년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 45호 고분의 발굴은 가야사 연구의 전환점이 됐다. 이 고분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로 뼈와 함께 토기, 철기가 대규모로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가야 고고학’이 성립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서기를 우리 입장에서 해석한 천관우(1925∼1991)의 연구도 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대왕(大王)이나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라고 새겨진 대가야계 토기가 발견돼 가야의 정치 체제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기도 했다.

호남 동부의 대부분이 한때 가야의 영역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건 1990년대 이후다. 일제강점기에는 한 일본인 학자가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 등 이른바 ‘임나4현’의 위치를 섬진강 유역으로 봤지만 이후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김태식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 지역이 전남 여수, 순천, 광양 일대일 것이라고 봤고, 2006년 순천에서 가야 고분군이 발굴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근래에는 전북 남원 장수 진안 임실 고분군이 가야의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에 우륵이 지은 가야금 곡 12개의 이름 중 10개는 사실 지명(地名)인데 그중 4개는 호남 지방”이라고 말했다.

○ 섣부른 복원보다 발굴과 연구가 먼저


가야 유물들은 수준 높은 철기문화를 보여준다. 1번 사진 경북 고령군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철 갑옷과 투구는 가야의 철기가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2번 사진 국보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5세기)에서는 말까지 철갑을 두른 걸 볼 수 있다. 3번 사진 금동관(32호분 출토)은 고대국가로 나아가던 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준다. 동아일보DB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가야사는 고고학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 문헌사와 고고학을 결합하는 학제적인 연구가 중요하다”며 “새로운 고고학적 자료의 증가에 따라 가야인의 삶과 죽음을 밝혀내는 연구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산하 가야문화재연구소가 현재 가야사 관련 발굴조사 중인 곳은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과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이다. 금관가야의 왕궁 추정지로 여겨지는 봉황동 유적은 2015년 9월부터 발굴하고 있다. 비화가야 최고지배층이 묻힌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2014년 3월부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연구소는 비화가야와 아라가야 등 권역별 고분문화의 특징을 규명하는 한편 출토 유물을 분류해 신라, 백제 등 다른 문화권과 비교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금관가야 시대 당시 고도(古都)를 재현하는 복원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김세기 대구한의대 교수(고고학)는 “남원, 진안, 장수, 순천 등 호남지역에도 규모 있는 가야유적들이 산재한 만큼 가야사 연구, 복원을 폭넓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계는 가야사 복원은 발굴조사와 같은 기초연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섣부른 복원은 유적의 의미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고학자는 “기초연구에 비해 복원에 더 중점을 두면 속도전 논란을 빚은 경주 월성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고대사학회장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연구가 현실문제 해결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조종엽 jjj@donga.com·김상운·김배중 기자
#가야사 복원#문재인 대통령#비화가야#아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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