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열 “남 위해 자신을 불태운 연탄 보고 작품의 영감 얻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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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연탄으로 작업하는 ‘연탄꽃’ 설치미술가 이효열씨

《4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하얗게 타버린 연탄에 꽂힌 장미 한 송이.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 강남역 사거리 한복판에 놓인 이 연탄꽃은 설치미술가 이효열(32)의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는 ‘목련 꽃할머니’전에 그의 연탄꽃이 전시됐다. 전시가 한창이던 지난달 서울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연탄꽃을 처음 만들 무렵 이효열 작가는 예쁜 꽃만 찾았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예쁜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꽃, 모든 사람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모양이 어떻든 피울 준비가 된 꽃을 찾습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연탄꽃을 처음 만들 무렵 이효열 작가는 예쁜 꽃만 찾았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예쁜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꽃, 모든 사람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모양이 어떻든 피울 준비가 된 꽃을 찾습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복동 할머니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위안부의 참상을 알리는 일을 많이 하셨잖아요. 뜨거울 때 피우는 연탄꽃과 닮았죠. 이런 뜻깊은 전시에 작가로 참여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연탄꽃은 그의 대표작품이다. 다 타버린 연탄에 오아시스(물을 머금은 스펀지)를 넣고 봉오리 상태의 꽃을 꽂아둔 것. 연탄꽃을 처음 만들게 된 건 4년 전인 2013년 겨울이었다.

“퇴근길이었어요. 집 앞에 쌓여 있는 연탄이 보이더라고요. ‘연탄은 남을 위해 저렇게 하얗게 불태우고 생을 마감했는데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뭘 하고 있나. 저 연탄처럼 뜨거울 때 꽃이 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이다. 가스보일러가 널리 쓰인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의 가족과 이웃은 아직도 연탄을 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연탄과 인연이 깊어요.”

“사춘기의 가난은 정말 힘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마천루가 즐비한 부촌(富村) 한가운데 놓인 그의 집터는 구경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집에서 나왔는데 사진 동아리 하는 분들이 그 모습을 찍더라고요. 특별하게 취급당하는 것 자체가 상처였어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은 쉬이 잊히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식 날, 꽃 한 송이 사올 형편이 안 됐던 어머니는 여동생과 그를 데리고 편의점에 간다. 1000원어치만 고르라고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와 여동생은 1000원이 약간 넘는 과자를 골랐다. “그때 엄마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1000원이 넘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그 표정요.”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체육학과에 진학하지만 그는 부상을 당했고 꿈을 접어야 했다. 방황하던 그를 사로잡은 건 우연히 접한 ‘권총 굴뚝’ 광고였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환경오염을 경계한다는 메시지를 그토록 간명하게 표현해 내다니…. 그 광고를 만든 이제석 씨에게 배우고 싶어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요.”

그렇게 광고인으로 살게 됐다. 광고는 재밌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어도 그가 하고 싶은 건 순수예술이었다.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 같은 게릴라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어렵게 들어간 광고회사를 결국 그만뒀죠.”

‘일상을 가장한 예술’을 하고 싶다는 그에겐 연탄꽃 외에도 다양한 작품이 있다. 그의 이름이 수놓인 ‘정류장 노란 방석’이 그중 하나다. “3년 전 사람들의 귀갓길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건데 지금 200개 정도 될 거예요. 연탄꽃이든 방석이든 사람들이 보고 용기를 얻고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연탄꽃#설치미술가#이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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