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원더우먼, 페미니즘의 상징인가 성적 판타지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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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허스토리/질 르포어 지음·박다솜 옮김/464쪽·1만7500원·윌북

75년 넘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최초이자 대표적인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원더우먼은 만화를 넘어 1970년대엔 드라마로 제작됐으며 다음 달엔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 돌아온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75년 넘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최초이자 대표적인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원더우먼은 만화를 넘어 1970년대엔 드라마로 제작됐으며 다음 달엔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 돌아온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1941년, ‘아이들에게 만화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우려가 커지던 때였다.

히어로물을 만들던 DC코믹스는 당시 하버드대 출신의 저명한 심리학자이면서 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는 윌리엄 몰턴 마스턴(1893∼1947)에게 SOS를 보낸다. DC코믹스에 편집자문위원으로 참여한 마스턴이 제안한 해결책은 이랬다.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캐릭터는 민주주의의 수호와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성 캐릭터입니다.”

원더우먼의 탄생 배경은 이랬다. 실제로 마스턴은 슈퍼맨과 배트맨 등 남성 일색이던 히어로판에서 “아동과 청소년에게 강하고 자유롭고 용감한 여성의 기준을 만들어주기 위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통념에 대항하기 위해” 원더우먼을 창조했다고 밝혔다. 마스턴은 남성이었지만 여성의 우월성을 신봉했고 모계사회가 주류가 될 것이라 믿었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에는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모임을 주도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마스턴이 1947년 암으로 숨지면서 스토리 작가가 바뀌는 등 원더우먼의 투사적 면모가 약해지긴 했지만 1972년엔 여성운동가들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이끄는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 창간호의 표지모델로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등 20세기 페미니즘의 선봉에 섰다.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 질 르포어는 ‘피임과 낙태의 정치화’에 대한 기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과 페미니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됐다. 무심코 수용했던 원더우먼 이미지에 대해 “원더우먼이 페미니즘의 진정한 표상인가?”라며 질문을 던진다. 원더우먼 창조자 마스턴이 생전에 남긴 편지는 물론이고 엽서, 법정 기록물, 스케치와 가족 앨범, 연방수사국(FBI) 파일과 강의노트 등을 찾아내 퍼즐 맞추듯 ‘원더우먼 탄생기’를 추적한다. 4년 동안 수집한 원더우먼의 모든 것을 엮어 교수는 탐사 보고서 형태의 글을 썼다.

르포어 교수의 탐사를 계기로 원더우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캐릭터는 자기모순적인 면모가 적잖긴 하다. 상반신이 훤히 드러난 채 가슴이 부각된 빨간 뷔스티에와 파란 핫팬츠…. 여성의 권리,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원더우먼은 화려한 노출 패션을 선보인다.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과 아테나의 지혜, 헤르메스의 빠르기, 헤라클레스의 힘을 지닌” 역대급 캐릭터라지만 번번이 사슬에 몸이 감기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위기를 맞아 남성의 왜곡된 성적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르포어 교수의 추적에 따르면 마스턴은 원더우먼만큼이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삶을 살았다. 페미니스트이면서 ‘여성은 묶이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하는 등 본디지(결박)성애자였다. 심지어는 여성참정권론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두 여성과 한 지붕 아래 산 중혼주의자이기도 했다.

마스턴이 남긴 원더우먼은 수십 년간 때로는 페미니즘의 상징이 됐다가 때로는 비판에 직면하는 등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다음 달엔 여성 감독인 패티 젱킨스가 연출하고, 배우 갈 가도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 ‘원더우먼’이 국내에 개봉한다. 영화에서 원더우먼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모은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원더우먼 허스토리#질 르포어#원더우먼#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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