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울화통 터지네… 2017 한국의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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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혜중공업의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展

‘장영혜중공업’의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은 한국 가정, 경제, 정치의 현재를 강렬한 텍스트 작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1층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장영혜중공업’의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은 한국 가정, 경제, 정치의 현재를 강렬한 텍스트 작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1층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장영혜중공업의 비디오 작품인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은 “예술가란 미래의 환영을 보는 능력을 떠맡아야 한다”는 독일의 작곡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작업이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 농단’과 맞물려서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3월 12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오늘 한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영혜중공업은 한국인 장영혜 씨와 중국계 미국인 마크 보주로 구성된 웹아티스트 그룹이다. 런던 테이트미술관, 파리의 퐁피두센터, 뉴욕의 휘트니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전시해온 작가들이다. ‘세 개의…’는 비디오 작품이긴 하지만 이미지보다는 텍스트를 주로 사용한다. 커다란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들을 읽는 게 작품 감상이란 얘기다. 작업은 층별로 ‘가정’, ‘경제’, ‘정치’를 주제로 삼았다.

 1층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서 비틀어 따왔다. 이야기는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 놀러갈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백수인 삼촌을 향해 구직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누는 듯하던 가족들은 이내 험악하게 욕설을 주고받고 식탁은 아수라장이 된다. 강렬한 배경음악과 함께 난장판의 강도는 높아져 가고 가족 간에 물리적 폭력이 행해지는 것으로 영상은 마쳐진다.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뿌리이고 원동력이기에 이 작품을 1층에서 선보이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2층과 3층은 기업, 정계와 얽힌 비선(秘線)이라는 현재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3층은 정치 권력, 2층은 경제 권력에 대한 고발이다. 3층에 비해 2층의 작업이 직접적이다. 2층의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에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기업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이 드러난다. 가장 논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태어나는 곳은 삼성 병원, 다니는 학교는 삼성 대학교, 취업하는 곳은 삼성 회사, 살고 있는 집은 삼성 아파트,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전화는 삼성 스마트폰…. 그러다가 45세에 갑작스럽게 퇴직하고는, 부유의 상징인 삼성과 가까워지고자 애쓰지만 쉽지 않은 인생 후반부를 텍스트로 보여준다.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선정적인 문구는 아트선재센터 건물 외벽에도 배너로 걸려 시선을 붙잡는다.

작가들은 정치인의 기만적 태도를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행위에 비유했다. 건물 외벽의 배너 이미지. 아트선재센터 제공
작가들은 정치인의 기만적 태도를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행위에 비유했다. 건물 외벽의 배너 이미지. 아트선재센터 제공
 3층의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 무엇을 감추나’에서는 정치인들의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행위를 정치인들의 기만적 태도와 나란히 놓는다. ‘머리를 물들이는 정치인, 그건 부정직해. 설득력도 부족해. 그리고 우리를 설득하는 건 그들의 임무야. 그들은 그 직무 수행에 실패하고 있어’ 같은 텍스트는 다소 산만하긴 하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정치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이번 전시는 장영혜중공업이 다뤄 온 자본과 정치에 대한 주제를 관통하면서 한국 사회의 단면을 살펴보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삶과 부조리를 들추어내는 듯한 그들의 사유는 위트 넘치면서도 통렬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3000∼5000원.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장영혜중공업#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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