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꼭두각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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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으로 나라가 신뢰 상실의 나락에 빠졌다. 아무런 직책도 없는 그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고, 국가 비밀문서 등을 사전에 보고받았다고 하니…. 오죽했으면 최 씨가 대통령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합성사진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을까.

 ‘꼭두각시.’ 우리나라의 민속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형들을 말한다. 이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줏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꼭두각시라고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는 가르친사위 망석중 망석중이 바지저고리 허수아비 등이 있다.

 가르친사위는 남이 가르치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다. 바지저고리 역시 남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고, 핫바지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망석중과 망석중이는 팔다리에 줄을 매어 그 줄을 움직이면 춤을 추는 인형이다. 꼭두각시와 가장 닮은 말이다.

 한데 이상하다. 왜 ‘바지저고리만 다닌다’는 속담만 있고 ‘치마저고리만 다닌다’는 속담은 없는 것일까. 바지저고리만 걸어 다닌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몸은 없다는 뜻으로, 실속 없이 행동하는 걸 말한다. 이 속담대로라면 예전부터 남자가 여자보다 더 실속과 줏대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어릴 적 많이 열렸던 반공웅변대회에서 연사가 목청껏 외치던 ‘괴뢰(傀儡)’란 낱말을 기억하시는지. 남북이 사이가 좋지 않을 때면 서로 ‘괴뢰군’이니, ‘괴뢰 정부’라고 비난했다. 그 괴뢰가 ‘꼭두각시’의 한자말이다. 괴뢰군이란 말을 적군(敵軍)이라는 뜻으로 아는 이가 많을 줄 안다. 허나 그런 뜻은 없다. 글자 그대로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군대, 즉 괴뢰 정부의 군대’라는 뜻이다.

 꼭두각시의 ‘꼭두’는 한자어 ‘곽독(郭禿)’에서 왔다. 중국 북제(北齊) 사람 안지추가 지은 중국의 가훈서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성이 곽(郭)씨에다 대머리(禿)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찌나 우스갯짓을 잘하던지 후대 사람들이 곽독이라 불렀다’고 한다. 곽독이 곡독→꼭둑→꼭두로 변한 것이다(장진한·‘신문 속 언어지식’). 꼭두각시는 오랫동안 꼭둑각시로 써 오다 1988년 한글맞춤법 개정에 따라 꼭두각시가 됐다. 사실 ‘꼭둑’은 ‘ㄱ’ 소리가 거듭나 제대로 발음하기가 쉽지 않았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최순실#국정 농단#대통령#꼭두각시#가르친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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