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뭐지? 이 근거없는 섹시함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5시 45분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드래그퀸 ‘롤라’로 분한 정성화. ‘근자감 섹시’로 부담(?)을 주는 롤라는 극이 진행되면서 진짜 ‘섹시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마술을 부린다. 사진제공|CJ E&M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드래그퀸 ‘롤라’로 분한 정성화. ‘근자감 섹시’로 부담(?)을 주는 롤라는 극이 진행되면서 진짜 ‘섹시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마술을 부린다. 사진제공|CJ E&M
■ 뮤지컬 ‘킹키부츠’ 정 성 화

‘드래그퀸’ 여장남자 롤라 역 완벽 소화
불리할 때마다 “죽을래?” 반전 목소리
노래는 물론 얼굴로 춤추는 안무도 굿

“재밌게 보셨어요?”

“초연 때보다 훨씬요.”

“올∼ 정말 좋은데요. 진짜루요. 감사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 만난 정성화와의 대화다. 분장을 지우지 않아 과장된 눈썹이 눈 위로 둥그렇게 그려져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을 입술에 칠한 정성화가 ‘정말 좋다’는 듯이 으하하 웃었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정성화가 맡은 역은 ‘롤라’다. 11월13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한다.

롤라는 드래그퀸(Drag Queen)이다. 그러니까 여장남자. 여성의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여성처럼 행동한다. 드래그퀸이 등장하는 쇼는 꽤 인기상품이다. 롤라도 화려한 드래그퀸 쇼의 주인공이다.

킹키부츠는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해외에서 들여온 라이선스 뮤지컬로서는 최신작이라고 할 수 있다. 토니어워즈, 올리비에어워즈 등 굵직굵직한 상을 많이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14년에 첫 선을 보였다. 제9회 한국 더뮤지컬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롤라를 맡았던 강홍석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스토리부터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 망한 구두공장을 아버지로부터 유업으로 물려받은 찰리(이지훈 분)가 드래그퀸 롤라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여장남자들을 위한 부츠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찰리는 롤라를 디자이너로 맞아 밀라노 패션쇼 진출을 준비한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상 위기는 닥치게 되고, 한바탕 싸움 끝에 롤라와 찢어진 찰리는 야심작 ‘킹키부츠’를 직접 신고 밀라노 패션쇼의 런웨이에 오르게 되는데 … (물론 결과는 참담하다).

● 천부적인 타이밍 감각…정성화 스타일 안무로 눈길 ‘확’

정성화의 롤라를 한 줄로 표현하면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의 섹시’이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투실투실한 몸을 하고도 “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해”하며 잘도 말한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맨오브라만차의 돈키호테, 영웅의 안중근 등 대작에서 심각한 주인공을 많이 맡았지만 종종 쾌활하고 엽기적이며 개그코드로 전신을 두른 작품도 출연하고 있다. ‘스팸어랏’의 허당 아더왕을 잊을 수 없다. 킹키부츠에서도 정성화는 개그맨 출신다운 고급진 개그감각을 발휘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장면, 대사라고 해도 철저히 사전 계산되어 대본 안에 들어 있기 마련이다. 롤라가 애드리브로 개그감각을 뽐낼 수는 없다는 얘기. 그렇다면 짜여진 대본을 갖고 어떻게 관객을 빵빵 터뜨리느냐가 관건이다.

정성화는 ‘말맛’뿐 아니라 ‘몸맛’으로도 재미를 치는 능력의 소유자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억양으로, 어떤 감정을 실어, 어떤 타이밍에 던지느냐에 따라 웃음의 파괴력이 달라진다. 불리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상을 쓰며 “죽을래?(이땐 굵은 남자목소리 등장)”하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객석이 뒤집어지는 이유는 정성화의 대사에 대한 ‘박자감각’ 덕분이다. 이런 건 직접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여하튼 0.01초 차이로 웃음이 달라진다.

드래그퀸 쇼에서 보여준 정성화의 춤도 눈을 확 잡았다. 정성화는 안무에 강한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유심히 보면 꽤 그럴싸하다. 동작이 시원시원한 데다 무엇보다 ‘얼굴도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손이 가는 곳에 눈과 입이 따라간다. 롤라의 쇼 무대에서 정성화 스타일의 안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처음엔 “뭐야?” 싶던 롤라는 극이 진행되면서 어느새 ‘여자’로 보이게 된다. 여자는 다시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었다가 한다. 종내는 그냥 ‘사람’만 흰 뼈처럼 남는다. 밀라노 패션쇼 런웨이에서 부츠를 신고 걷다 자빠져 망연자실해 하는 찰리를 위해 ‘돌아온 롤라’가 드래그퀸들과 함께 런웨이로 걸어 나오는 장면에서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 본 정성화의 롤라는 과연 예쁘고 섹시했다. 분장실에서 만난 정성화에게 “정말 좋았다”며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사실은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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