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F와 P 발음, 한글로도 표기 가능하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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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학박사 안영배기자의 ‘도시의 異人 열전’]④ 훈민정음 연구하는 ‘천문도사’ 반재원

○영어 v 와 f 발음도 한글로 표기 가능

인터넷 영어사전에서 한글로 ‘파일’을 입력하면 서류철을 의미하는 ‘file’과 건축용 말뚝이나 포개 놓은 더미를 뜻하는 ‘pile’이 동시에 뜬다. 영어 발음인 p와 f를 한글 표기법으로는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v와 b도 마찬가지다. 한글 발음으로 ‘베스트’라고 하면 외국인들은 제일 좋다는 ‘best’인지 조끼를 뜻하는 ‘vest’인지 헷갈려 한다. 한글이 세계 어느 나라 말도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우리의 자부심과 외국학자의 칭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한글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든 글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사용하는 한글은 원래의 글자보다 줄어들어 기능적으로 불완전한 상태가 돼버렸어요. 우리 학계가 15세기 천문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한글을 19세기 말에 정립된 서양 언어학의 잣대로 연구하는 바람에 세종의 창제 원리를 놓친 측면이 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한글 세계화 운동’도 좋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게 전 세계의 외국어를 원 발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도록 한글의 옛 글자를 살려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v와 f 발음은 훈민정음의 합용병서(合用竝書)인 ㅅㅂ, ㅅㅍ으로 온전히 표기해낼 수 있어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여 있으나 근세에 사라진 합용병서를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한글 세계화의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초성 합용병서 사용을 주창하는 유일한 한글학자이자 연구가인 반재원 훈민정음연구소장(66)의 말이다. 40년 가까이 한글 한 분야만 연구해온 반 소장은 1443년 한글 창제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한글은 세계 언어의 90% 이상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합용병서 중 외국어 발음 표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몇 글자만 되살려내도 돼요. 우리는 이미 발음 구조가 굳어져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 세계의 공용도구인 컴퓨터 자판에서 합용병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기만 해도 괜찮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글로 자신들의 발음을 충분히 표기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자발적으로 한글을 이용하는 세계 인구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합용병서를 사용하면 과연 전 세계 언어를 한글로 모두 표기할 수 있을까? 내친김에 한국인들이 가장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th(θ· ð)’에 대한 그의 표기법을 들어보자. 이 글자는 훈민정음에서 반설음(ㄴ)의 합용병서인 ㄴㅅ(θ)과 ㄴㄷ(ð)으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한다. 즉 ‘this’는 ‘ㄴ디스’로 표기하고 발음할 때는 혀를 살짝 빼물어 ‘디-’하면 된다고. 마찬가지로 ‘tooth’의 경우 ‘투ㄴㅅ+ㅡ’로 표기할 수 있으며 혀를 살짝 빼물어 ‘스’를 발음하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영어의 ‘r’는 물론, 중국어의 권설음 ‘ch’ ‘zh’ ‘sh’ 등도 모두 한글 표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한글은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를 합친 24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글의 모체인 훈민정음은 원래 28자였습니다. 초성의 ‘ㆁ, ㆆ, ㅿ’ 자와 중성의 ‘ㆍ’자가 없어졌지요. 사라진 4자의 음가를 복원하고 앞서 말한 합용병서를 일부 사용하면 모든 언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한글 28자를 사용하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 아랍어, 힌디어, 몽골어, 네덜란드어, 루마니아어 등 21개국 언어의 발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외국 학자들이 한글이 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라고 말하는지, 왜 국제 공용어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반 소장은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현지인의 정확한 발음을 채록해 한글이이들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을 증명해냈다고 말했다.

○훈민정음 28자는 천문도 28宿의 원리

한글 예찬론자인 반 소장도 처음부터 한글에 푹 빠져 살아온 것은 아니다. 부친과 형제들 모두 교직자 집안인 그는 서울 시내 공립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2012년 정년퇴직한 ‘선생님’ 출신이다.

그는 평소 동양철학과 역학에 관심이 많아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 분야를 연구해왔다고 한다. 동양철학이나 역학과 관계된 분야면 어디든 마다 않고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러던 중 “훈민정음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역학이론에 근거한 언어”라는 어느 역리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훈민정음에 목·화·토·금·수 5행과 10간12지의 이론이 다 들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그럴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주학 대가를 찾아 사주 명리학을 배웠는데, 한 2년을 공부했는데도 뭔가 막혀서 잘 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5행 이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한의학 공부에도 도전했지요. 당시 한약학원 같은 곳이 있어서 방과 후 수강을 하며 또 열심히 2년을 배웠지요. 덕분에 침놓는 법도 알게 됐지만 학문적 궁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로 주역, 성명학 분야 등을 섭렵하면서 결국 천문학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그 과정이 근 40년 세월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8괘의 근본 생성원리를 논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천문도임을 알게 되고, 훈민정음 역시 하도 및 낙서와 연계된 천문원리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글자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훈민정음의 중성 배열 순서(· ㅡ l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는 동양천문도인 하도에 이론적인 바탕을 둔 것이고, 초성 배열 순서(ㄱㅋ¤,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ㅎㅇ,ㄹ,△)는 낙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훈민정음이 28자로 만들어진 이유 역시 28수 천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의 천문 사상은 동서남북에 각각 7개의 별자리를 배치해 모두 28개의 별자리로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3년 세종이 직접 28수 거리 및 도수 등을 일일이 측정해 천문학자 이순지에게 석판에 새기게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세종은 당시 혼천의·자격루·앙부일구 등 뛰어난 천문·계측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훈민정음을 완성했다. 반 소장은 “당시 중국의 책력·달력을 얻어다 쓰던 조선은 세종의 자주적 천문역법 제작으로 명실공히 주권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렇게 천문으로 ‘우리 하늘’을 찾은 세종이 그 다음 작업으로 천문으로 우리글을 창제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즉 세종은 명나라의 하늘에서 벗어나 ‘조선의 하늘’을 갖고자 했던 자주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조선의 문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가 훈민정음이 천문의 원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당시 마치 도를 닦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안(開眼) 같은 신비 체험도 했다고 한다.

“눈알에 덮여 있는 투명하면서도 하얀 막이 벗겨지는 듯한 현상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고는 하늘의 별자리와 하도 및 낙서의 원리가 하나로 엮여져 입체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마음이 읽혀지면서 한글이 철저히 28수 천문의 원리를 적용시켜 만든 글자임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見性)이 바로 이런 체험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의 체험은 학문을 깊이 천착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홀연히 모든 이치가 하나로 관통하면서 막힘이 없는 이통(理通)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그러기까지에는 집안의 희생이 있었다.

“제가 교사 생활하면서 받은 월급이 보름이 지나면 바닥이 나는 바람에 아내가 이웃들에게 생활비를 빌리는 일이 한두 해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1980년대 초반인가, 제 월급이 80만 원쯤 하던 시절입니다. 월급의 3분의 1을 제 공부하는 데 쓰다 보니 아내는 늘 생활비에 쪼들리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엄두도 못 냈다는 거예요. 아내는 그런데도 한번도 월급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어요. 결혼 선물로 받은 백금반지를 전당포에 맡겼다가 되찾아오는 일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는 얘기를, 교사직을 은퇴할 즈음에 처음으로 듣고는 얼마나 미안했던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저는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오로지 공부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신나게 돈을 쓰고 돌아다녔던 거지요.”

아내의 희생 덕분으로 그는 2013년 그간의 천문학과 훈민정음 연구 결과를 논문(훈민정음 창제원리와 천문도와의 상관성)으로 발표해 이 분야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옛글자를 사용한 21개 외국어회화 표기 예’ ‘한글의 세계화 이대로 좋은가’ ‘한글 창제원리와 옛글자 살려 쓰기’ ‘씨아시말’ ‘쥐뿔이야기’ 등 한글 관련 저서를 꾸준히 펴냄으로써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한글이 훌륭하다는 걸 알면서도 의외로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연구하는 학자가 적다는 점이 늘 아쉬워요. 경기도와 여주시가 여주 영릉에서 개최하는 한글날 기념식 때 훈민정음 서문을 옛 발음으로 낭독할 수 있는 이가 없어 할 수 없이 제가 수년째 낭독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도로명 주소는 정체불명의 안내판

그의 한글 사랑은 훈민정음 연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땅이름학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순우리말 땅이름이 한자 이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래 지니고 있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가 허다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몇 가지 사례. 전남 ‘목포(木浦)’라는 지명을 보자. 남쪽의 개펄이라는 뜻의 ‘남의 개’가 ‘나무개’로 변하고 그것이 나무 목(木)과 물가 포(浦)로 잘못 인지돼 오늘의 목포라는 지명이 됐다고 주장한다. 남이섬도 잘못 안 사례다. 이 역시 ‘남쪽의 섬’이라는 뜻인 ‘남의 섬’인데, 그것이 와전돼 ‘남이섬’이 돼버렸고, 엉뚱하게 남이장군의 가짜 무덤까지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남이 장군의 진짜 무덤은 경기 화성군에 있다.

또 여우고개는 산길이 넓지 않고 여윈(살찌지 않은) 길이 나 있는 고개라는 뜻의 ‘여윈고개’인데 여우고개로 둔갑했다. 몽촌토성의 ‘몽촌’은 어떨까. 원래는 큰 마을이라는 뜻의 ‘검마을’이었고, 이게 경음화 현상으로 ‘끔마을, 꿈마을’로 변했다. 그런데 ‘꿈’이라는 단어 때문에 한자음을 빌려 꿈 몽(夢), 마을 촌(村)으로 표기함으로써 오늘의 몽촌이 됐다.

원래의 우리말과 그 변천 과정을 아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렇게 부지기수로 잘못 알려진 지명을 바로잡아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반 소장의 주장이다.

반 소장은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자격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서울 종로의 종각 사거리에서 도로명에 동이름을 병기해야 한다는 길거리 서명 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그 결과 현행 도로명 주소에 동명을 추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역의 역사와 유래, 형세, 기후풍토, 지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 동네 이름입니다. 선비마을, 정승골, 비석골, 효자동, 삽다리, 양산다리, 너덜이, 놀뫼, 노루목, 구리골, 말죽거리, 마장동, 구파발, 역삼동, 역촌동, 비상리, 비하리, 무너미, 온정리, 초정리, 약수동, 옥수동 등은 그 마을의 유래와 용도를 정감 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지명에는 우리 역사와 문화가 들어 있어요. 그걸 행정 편의성을 이유로 ‘월가 몇 번지’하는 서구식 주소로 개편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행의 도로명은 정체불명의 주소입니다. 오히려 우리 전통이 살아 숨쉬는 지명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사용해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그는 울분을 토해내듯 현행 도로명 주소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했다. 그의 한글과 우리 문화 사랑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옛날에 배운 한약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토종의 홍화씨와 오이씨를 구해 20여 년 전에 구해 지금까지도 보존해오고 있을까.

“토종 홍화씨와 오이씨 등 우리 종자가 없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씨앗을 보관해오고 있어요. 저마저 이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언제 멸종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예요. 진심으로 우리 토종 씨앗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나누어줄 생각도 있습니다.”

그는 기자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쥐뿔’은 ‘제 뿌리’라는 말로 제 뿌리도 모르는데 남의 일에 참견한다는 의미다. 비어로 알고 있는 ‘¤도 모르면서 까분다’는 말도 비슷하다고 했다. ‘¤’은 조상 조(祖)에서 유래한 것으로 역시 ‘조상도 모르면서 까분다’는 뜻이라고.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기자의 마음 한쪽이 뜨끔했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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