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인 것과 아닌 것의 경계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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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미술대상전 후보작가 4인전

이재이 씨의 영상작품 ‘완벽한 순간’. 중년 발레리나의 회고 인터뷰, 그것을 듣고 난 젊은 발레리나의 동작 재연 영상을 나란히 보여준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이재이 씨의 영상작품 ‘완벽한 순간’. 중년 발레리나의 회고 인터뷰, 그것을 듣고 난 젊은 발레리나의 동작 재연 영상을 나란히 보여준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기업 또는 사설 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 주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작품 외적인 흥미로움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을 주려 하는 쪽도, 후보로 선정돼 역량을 압축적으로 선보이는 작가 쪽도, 좋은 계기의 만남에서 괜한 논란이 불거져 나오지 않길 바라기 마련이다.

내년 1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제15회 송은미술대상전은 그런 면에서 좀 별나다. 지원자 423명 가운데 선정된 후보 작가 4명이 내놓은 작품 중 전통적 맥락의 회화나 조각은 없다. 영상도 그림도 설치도, 성미 급한 관람객이 “이게 무슨 예술이냐” 발끈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지루하고 따분하다” 불평하기는 어렵다.

전시실 초입을 차지한 것은 이재이 씨(42)의 12분 길이 2채널 영상작품 ‘완벽한 순간’이다. 은퇴한 중년 발레리나의 인터뷰와 젊은 발레리나의 연습실 영상이 맞물려 돌아간다. “그 동작을 하는 상태가 좋았어요. 한 발을 높이 올리고 발끝은 다른 발의 등을 향한 채 몸 전체를 활처럼 둥글리며 휙 하고 다리를 저었죠.”

완벽했던 기억의 회고를 후배의 젊은 육신이 재연해보려 애쓰지만 온전할 리 없다. 10년 전 2400번의 점프 동작을 1분 50초 길이로 편집한 공중부양 영상을 선보였던 이 씨는 몸 쓰는 행위에 따라붙는 모순적 목적성을 보여준다.

손동현 씨의 수묵화 ‘Master Bone Method’. 형상을 묘사함에 있어 필치와 선의 연결을 적절하게 하라는 지침인 ‘골법용필(骨法用筆)’을 반영한 캐릭터다.
손동현 씨의 수묵화 ‘Master Bone Method’. 형상을 묘사함에 있어 필치와 선의 연결을 적절하게 하라는 지침인 ‘골법용필(骨法用筆)’을 반영한 캐릭터다.
손동현 씨(35)는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2006년부터 마이클 잭슨, 슈렉 등 미국 대중문화 아이콘의 동양화 초상을 선보여온 작가다. 신작 ‘육협(六俠)’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조직한 ‘저스티스 리그’를 연상시킨다. 중국 남북조 작가 사혁이 제시한 산수화의 여섯 요체를 나름의 캐릭터로 재해석해 그렸다. 이미지의 배치를 논한 ‘경영위치(經營位置)’를 맡은 캐릭터는 8개로 분할해 전시 공간에 따라 늘 새롭게 배치하도록 하고, 대상의 생명력을 담아내길 강조한 ‘기운생동(氣韻生動)’은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서 본 ‘초사이어인’ 표현을 빌려온 식이다.

박준범 씨의 ‘습기에 저항하는 방법’. 얇은 나무판자를 세워놓고 물을 뿌리면서 휘어져 넘어지지 않도록 아슬아슬 붙들어 버티는 상황을 11분 길이의 영상에 담았다.
박준범 씨의 ‘습기에 저항하는 방법’. 얇은 나무판자를 세워놓고 물을 뿌리면서 휘어져 넘어지지 않도록 아슬아슬 붙들어 버티는 상황을 11분 길이의 영상에 담았다.
박준범 씨(39)는 27분 길이의 영상 ‘대피소 리허설’을 출품했다. 건축가 조유진 씨와 함께 ‘20명 정원의 산기슭 반지하 대피소에 50명이 30일간 외부와 격리돼 거주할 공간을 마련한다’는 과제를 수행하며 영상으로 기록했다. 대피소를 구축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빠른 속도로 응축해 보여주며 그 행간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박보나 씨의 퍼포먼스 설치작품 ‘Domestic-scale Choreography 2’. 예술가의 창작과 전시실 직원의 일상적 노동이 교차하는 공간의 의미와 관계성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다.
박보나 씨의 퍼포먼스 설치작품 ‘Domestic-scale Choreography 2’. 예술가의 창작과 전시실 직원의 일상적 노동이 교차하는 공간의 의미와 관계성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다.
출구 근처 전시실에는 박보나 씨(38)의 빨래가 잔뜩 널려 있다. 전시 오프닝 행사의 다과 집기를 부각시킨 작품을 내놓기도 했던 그는 이번에는 미술관 조직에서 가장 하위에 놓인 도슨트(안내원)에 주목했다. 도슨트로부터 받은 옷들이 섬유유연제 향이 진동하는 전시실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공간’과 그 공간에서 일하는 이의 관계를 묻는다. 광산에서 매몰됐다 구조된 광부의 체험을 사운드로 재현한 영상작품 ‘1967_2015’는 아트센터 모회사인 광산업체 ‘삼탄’과 노골적으로 연결된다. 작품보다는, 그것이 놓인 상황이 한층 더 흥미롭다. 02-3448-01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송은아트스페이스#송은미술대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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