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47·끝>기-승-전-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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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선이 푸념을 한다. “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없을까?”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남편 찾기 게임’이 막바지로 달려가는 중이다. 천재 소년 기사(棋士) 최택이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수줍기만 했던 그는 덕선에게 향한 애정을 용기 있게 표현한다. “그냥 좋아. 없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반면 남편 후보 1순위였던 정환은 덕선에게 오해를 받으면서도 변명을 못하는 답답한 처지가 되었다. 덕선의 관심사는 ‘누가 나를 좋아해 주느냐’에 맞춰져 있다. 초반에는 선우가 그녀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자 오해했다가 상대가 언니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성의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라마의 시청률로 반영된 게 ‘기-승-전-사랑’이다.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범죄 드라마는 경찰서에서, 역사 드라마는 궁 또는 대궐에서 장소를 바꿔 사랑을 이뤄간다. 그들에게는 왜 만사가 사랑받기로 귀결되는 것일까. 오랜 세월 동안 선택받는 존재로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의 동화작가이자 ‘할머니 한류 마니아’ 사노 요코(1938∼2010)는 수필집 ‘사는 게 뭐라고’를 통해 중년 여성 심리를 이렇게 정리했다.

“아줌마들은 외롭다. 인생은 이제 내리막길이다. 집에는 꾀죄죄한 아저씨가 늘어져 있다. 남자는 귀찮다. 그러나 사랑만은 받고 싶다. 애정으로 한가득 채워지고 싶다. 그것도 두 사람에게 죽도록 사랑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현실적인 사랑을 우여곡절 끝에 이뤄가면서도, 이뤄지지 않을 또 하나의 아련한 사랑을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세심한 마음씀씀이로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귀신같이 알아서 챙겨주는 남자. 보통 남자라면 “그런 ×이 어딨어?”라고 코웃음을 칠 것이다. 사노 요코 또한 그 점을 인정한다. “이성은 모순을 허락하지 않지만 감성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아줌마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살아와서 사회성과 객관성이 없다.”

그러나 사회성과 객관성으로는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가족의 중심에 아내이자 엄마가 있기에 볼 꼴 못 볼 꼴 모두 포용해내어 한 울타리 안에서 지지고 볶으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받아도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사랑이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믿음을 가진 여성은 그 확신이 촛불만큼이라도 살아 있는 한 그 빛을 밝혀 가족을 지켜낸다. 사랑을 받는 게 출발점이다.

어느새 연말이다. 올해 마무리 인사를 “고맙다”로 시작해 “사랑한다”로 맺어 보면 어떨까. 아내한테 “또 뭘 잘못한 거야? 솔직히 말해!”라는 말을 듣더라도 말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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