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46>그들에게 ‘먹는 즐거움’이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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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집 모임에서 여성 세 명과 한 테이블에 앉은 죄로 ‘음식 고문’을 당했다. 큰 접시들이 들락날락하는 와중에 내 앞에만 산더미처럼 음식이 쌓였다. 서빙하는 여성에게 어필을 하니 “여자분들은 다이어트 때문에…”란다.

고군분투했으나 음식의 절반 이상이 남았다. 버려질 음식이 아까워 나올 때 만난 식당 사장에게 아이디어를 냈다. “여자들 테이블에는 음식 양이나 사이즈를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사장이 손사래를 쳤다. “그건 어렵죠. 푸짐해 보여야 손님들이 좋아하시니까요.” 한정식집 손님은 거의가 단체예약인데, 특히 여성 모임이 음식의 가짓수와 양에 민감한 경향이 있다고 했다.

먹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부리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여성의 접근법은 남성과 많이 다르다. 국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워 ‘허기를 때우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식사를 원한다.

시작은 눈이다. 여자들은 눈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대한 이채롭고 다양한 음식을 접하고픈 심리인데, 뷔페식당에서 접시를 들고 다니는 여성들의 즐거운 표정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보기 좋고 신선하며 맛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이는 인류 역사상 오랜 세월 동안 채집과 저장을 담당하며 위험하거나 변질된 먹거리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형성된 본능적 선택일 것이다.

여성은 궁극적으로는, 마음으로 먹는다. ‘배부르게’보다 ‘남다른 경험’이 우선이다. 때로는 음식 맛보다 인테리어 같은 세련된 분위기가 중요할 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의 맛집이 보편적 맛집인 것은 아니다.

‘남다른 경험’ 추구는 ‘남의 다른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다. 텅 빈 식당에서 이런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한산한 시간에 밥을 먹다 보면, 입구에 나타난 두 여성이 숱한 빈자리를 마다하고 옆 테이블로 와서 앉을 때가 많다. 그러고는 뭘 먹는지 힐끔거린다.

더 많고 다양한 경험이 여성들 사이에서는 우월감으로 통하기도 한다. 친구 따라간 식당에서 기분 상해 돌아온 아내의 분풀이가 그 대척점에 있다. ‘뜨는 맛집’ 주제의 대화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가본 척 애매하게 대답하는 것 또한 주눅 든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먹는 즐거움의 최종 완성 역시 기분, 즉 분위기에 달려 있다. 남들은 어떤지 살펴 “맛있다!”로 이심전심일 때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며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음식이 맛있어 기분이 잘 통할 때도 있고, 사이가 좋아 함께 먹는 음식이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먹을 때도 그들에게는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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