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일본인 권리 잃었지만, 양국 협정따라 처리하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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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직후 日의 對韓 역청구권 문제… 美 애매한 입장 한일갈등 되레 악화
냉전시기 극동 안보전략 계산 깔려

광복 직후 ‘대일(對日) 청구권’을 둘러싼 한일 갈등에서 미국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사료가 발굴됐다. 제2차 세계대전 교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던 국제정치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따른다.

박진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최근 발표한 ‘한일회담 관련 국사편찬위원회 수집 자료 연구’ 논문에서 1950년대 한일회담이 이뤄질 당시 미 국무부와 한국·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 사이에서 오간 공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국(NARA)에 보관된 당시 재외공관 문서 중에는 ‘한일관계(ROK-Japan Relations)’라는 주제로 따로 분류된 문서철이 존재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미국에 중요한 외교 현안이었다. 미국이 한일협정의 막전막후에 깊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중 주목할 만한 문건은 1952년 4월 29일 존 앨리슨 대일평화조약 수석고문 보좌역이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낸 일본의 ‘대한(對韓) 청구권’ 요구에 대한 문건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한국의 대일 청구권 요구에 대해 “한국 내 일본인들의 사유재산 몰수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역으로 대한 청구권을 주장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적반하장식 요구’라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일본의 주장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요청했다.

앨리슨은 양 대사에게 보낸 문건에서 “대일평화조약과 미 군정청 법령에 따라 한국 내 일본인들의 모든 권리와 청구권은 상실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를 붙였다. “일본의 대한 청구권 문제는 한일 양국이 특별협정에 따라 적절히 처리할 것을 미국은 권고한다”고 밝힌 것. 법적으로는 일본의 역청구권 요구가 적법하지 않다고 명시하면서도 한일협상으로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박 편사연구관은 “미국이 냉전시기 동아시아 안보전략을 고려해 정치적으로 일본의 체면을 세워준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애매한 태도는 오히려 한일 갈등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양국이 이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각서를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끝까지 맞섰기 때문이다. 결국 한일회담은 1953년 10월부터 무려 4년 6개월이나 결렬된 끝에 미국의 압력으로 가까스로 1958년 4월에야 재개됐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일회담#대한 청구권#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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