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연금시대, 도서관 복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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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그건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북카페 같았다. 경기 파주시 출판도시에 지난해 개관한 ‘지혜의 숲’ 도서관. 개관 당시 벽을 가득 채운 8m 높이의 서가, 서가 길이 3.1km, 도서 20만 권, 24시간 개방 등의 수식이 붙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들어서니 느낌은 달랐다. 분야별 분류가 되어 있지 않았고, 숲처럼 서가를 높이 올리긴 했지만 저 높이에 있는 책을 어떻게 꺼내보라는 것인지 의아했다. 도서관으로서의 현실적인 기능은 매우 부족해 보였다. 벽을 가득 채운 서가와 20만 권이나 되는 책은 북카페의 인테리어 소품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서울 종로구의 정독도서관을 종종 찾는다. 개가식 열람공간은 지혜의 숲 도서관에 비하면 밋밋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이곳엔 무언가 신선함이 있다. 그 신선함은 장년층과 노인들이 의외로 많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노인들은 열람실 곳곳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는다. 족보를 찾아 읽는 사람, 역사서나 문화재 답사안내서를 읽는 사람, 신착 코너에서 신간을 뒤적이는 사람. 간혹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도 훗날 노인이 되어 도서관을 즐겨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가 연금이다.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좌다. 어딜 가나 연금 이야기다. “연금은 노후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필수요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얼마 내고 언제부터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연금 액수도 중요하지만, 노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

10여 년 전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 성에 갔을 때, 카메라를 든 노인들이 단체로 답사를 다니며 열심히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내게는 놀라운 풍경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노인들의 여가 문화였다. 사진을 찍는 일, 노인에게 참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도쿄로 출장 갔던 어느 날, 아침 일찍 특별전을 보러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갔다. 문을 열기도 전에 매표소 앞으로 관람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전시가 시작되자마자 미술관은 붐볐다. 그런데 관람객의 3분의 2는 노인이었다. 우리와 많이 다른 일본의 박물관 미술관 관람 문화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박물관 미술관 관람객은 청소년과 학부모가 가장 많다. 대부분 아이의 공부와 성적을 위해서다. 우리 도서관도 상황은 비슷하다.

파주 지혜의 숲 도서관을 다녀오고 나니 정독도서관이 더욱더 생각났다. 그러곤 오래전 일본에서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사회로 들어선 일본, 그곳 노인들의 여가 문화 풍경들.

젊은 세대가 도서관을 찾아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고 창의성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노인들도 도서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도서관은 커다란 공간일 필요는 없다. 인테리어가 좋을 필요도 없다. 노인들이 쉽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까운 마을 도서관이면 된다. 도서관에서는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문화교양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도서관 운영 주체들이 노인을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고 늘려야 한다. 연금이 중요하지만, 연금이 전부일 수는 없다. 도서관은 노인 복지, 노년 여가 문화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박물관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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