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자기검열…‘평양의 영어선생님’ 눈에 비친 北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3일 1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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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늘 서로를 의심하였다. 경계선 주위로 끊임없이 돌면서 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진이 빠졌다. 우리는 서로에 관해 알고 싶었지만 그런 정보를 우연히 발견하면 모두 얼어붙었다.
―평양의 영어 선생님(수키 김·디오네·2015년)

8년 전 대북사업을 벌인 중소기업의 실무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탈북자임을 스스로 밝히지 않았지만 말투와 대화내용을 통해 그가 북한 출신이라는 점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 한 번이었지만 그 만남이 잊혀지지 않는 건 대화 내내 지속된 팽팽한 경계심 때문이다. 대부분의 취재원들이 기자를 경계하지만 그는 유독 심했다. 기자의 가벼운 사담에도 짧은 답으로 일관했고 표정은 경직돼 있었다.

수키 김이 북한 고위층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을 토대로 쓴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으며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책에 묘사된 이들은 금기된 내용을 내뱉지 않는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며 대화한다. 외국인 영어교사들과의 가벼운 대화에서도 사생활이 새나가지는 않을까 거짓말로 견고한 담을 쌓는다. 북한 사람들이 모두 이렇다고 쉽게 단정 짓긴 힘들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책 속의 인물들은 때로 동질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평양을 영어로 언급할 때 수식어로 ‘나의’ 대신 ‘우리의’라고 쓰는 언어습관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런 언어습관은 한민족 공통의 습관인지 나도 수년 전 영국인 영어 교사에게 영작문 첨삭지도를 받았을 때 많이 지적받았던 사항이다. ‘나의 집’ 보다는 ‘우리 집’, ‘나의 동네’ 보다 ‘우리 동네’가 익숙한 게 우리들 아닌가.

정치권에서 ‘통일대박론’이 나오는 등 통일에 관한 거대담론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담론에 앞서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일이 선행돼야하지 않을까 싶다. 통일 정책도 결국 남북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교과서가 된다. 잠입 저널리즘을 실천해 북한의 속살을 보여준 수키 김에게 고맙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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