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뤼통, 그 장인의 혼이 담긴 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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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나를 찾아서]

프랑스 보물로 선정된 샤또 라 루비에르.
프랑스 보물로 선정된 샤또 라 루비에르.
샤또 라 루비에르 1987.

글로만 보던 올드 빈티지 와인이다. 무려 28년이나 숙성된 와인. 조심스럽게 코르크를 빼고 와인을 조용히 글라스에 따른다.

우선, 계속 봐오던 와인들과 확연히 다른 비주얼을 보인다. 살짝 갈색 빛이 도는 붉은색으로, 오랜 세월 동안 손때가 묻어 잔잔한 빛을 띠는 마호가니 서랍장을 연상시킨다.

아로마에 집중을 해보면, 비가 그친 뒤 화단에서 맡을 수 있는 젖은 흙 향, 신선한 양송이버섯의 내음, 시가 향, 아름드리 나무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나무 향과 솔잎 향, 그 외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아로마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과일 향이 폭발하는 듯한 와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료’다. 입 안에서의 느낌은 그야말로 ‘잔잔함’이다. 뭐 하나 특별히 도드라지는 맛 없이 모든 맛들이 제 자리에서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하모니를 이룬다. 특히 잘 녹아든 타닌의 느낌은 이 와인에 깊이를 더해준다. 올드 빈티지 와인은 연륜의 맛이다.

앙드레 뤼통
앙드레 뤼통
이 와인을 만든 이는 농부이자 위대한 와인 생산자, 앙드레 뤼통이다. 뤼통의 와인 인생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약 30ha의 샤또 보네가 시작이었다.

현재 뤼통은 보르도 지역의 10개 와이너리(총 630ha)를 소유해 보르도에서 세번째로 규모 있는 와이너리 소유자가 되었다. 패기 있고 능력 있는 젊은이가 훗날 큰 성공을 거두는 스토리는 항상 흥미롭다. 하지만 뤼통의 스토리는 흥미를 넘어 감동을 준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서서 보르도 와인 역사에 한 획을 크게 그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앙드레 뤼통의 샤또 라 루비에르.
앙드레 뤼통의 샤또 라 루비에르.
1965년 뤼통은 보르도 남쪽에 위치한 그라브 지역으로 눈을 돌린다. 뼈 속까지 보르도 사람인 그에게 있어 보르도 와인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버려졌지만 가능성 있는 포도밭을 사들였는데, 현재 프랑스 보물로 지정된 아름다운 샤또 라 루비에르도 이때 매입하게 된다. 뤼통의 이름을 보르도 역사에 길이 남긴 사건도 하나 생긴다. 바로 1987년 페사크 레오냥의 탄생이다. 페사크 레오냥은 보르도 전체 생산량의 1%에도 못 미치는 새로운 AOC였으나 곧 소비자들로부터 가격에 비해 훌륭한 품질로 인정을 받았다.

90세인 현재까지 뤼통은 포도밭과 양조장에 나가 직접 모든 일을 지휘하고 있고, 각 포도밭의 특성이 드러나는 35종의 와인을 생산한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그의 와인들은 여전히 사람을 감동시킨다.

손희정 기자 son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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