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팝아트 총아’가 그린 현대인의 무중력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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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기 26번째 개인전

이동기의 올해 신작 아크릴화 ‘욕조 속의 여인’(위쪽 사진)과 ‘소쉬르’(아래쪽 사진). 윤곽이 명확하지만 의미 없는 이미지, 연결점 없이 분절된 이미지의 강제적 조합을 통해 현대사회의 이미지 소비 형태와 인식을 성찰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이동기의 올해 신작 아크릴화 ‘욕조 속의 여인’(위쪽 사진)과 ‘소쉬르’(아래쪽 사진). 윤곽이 명확하지만 의미 없는 이미지, 연결점 없이 분절된 이미지의 강제적 조합을 통해 현대사회의 이미지 소비 형태와 인식을 성찰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14년 전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 직선 환승통로 벽에 정체불명의 만화 캐릭터 그림이 빽빽하게 붙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아톰’의 삐죽삐죽한 머리 모양에 미국을 대표하는 만화 주인공 ‘미키마우스’의 얼굴을 붙인 형상이었다. 예쁘게 보이려 한 의도가 크지 않았던 탓인지 검정으로 굵게 돌린 윤곽 테두리가 거칠었다. 신기해하는 이들만큼 불쾌해하는 반응도 많았다. ‘보기 난잡하니 지워 달라’는 민원이 쌓여가던 2년 후 어느 날 누군가가 스프레이 라커를 뿌려 그림을 훼손했다. 얼마 뒤 벽화는 사라졌다.

이동기 작가(47)가 ‘한국 팝 아트의 총아’로 주목받은 건 분명 이 ‘아토마우스’ 덕분이었다. 하지만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는 26번째 개인전 ‘무중력’에 걸린 25점 중 아토마우스 그림은 4점뿐이다. 다양한 실험적 조합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이미지 언어의 의미를 줄기차게 헤집어온 그가 맞은 변곡점이 희미하게 감지된다.

전시는 ‘절충주의’ ‘드라마’ ‘추상’ 세 가지로 주제 영역을 분할했다. 2010년부터 작업한 ‘절충주의’ 시리즈는 대중 미디어가 무질서하게 방출하는 갖가지 이미지를 개연성 없이 뭉뚱그려흡수하는 현대인의 의식을 표현한다. 야구공, 여객선, 북한군, 백화점 세일광고, 로봇, 고양이, 미군 TV방송 편성표,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사진을 뒤범벅으로 섞었다.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찾으려 애쓰다 보면 문득 바보가 된 기분이 든다.

2층의 ‘드라마’ 시리즈는 반대로 이미지가 너무 명쾌해서 혼란스럽다. 저녁 지상파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무성의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을 정지화면처럼 그려놓았다. 와인 잔을 옆에 두고 욕조에 들어앉아 머리수건을 두른 채 전화통화를 하는 여자, 침대에 엎드려 잠든 소녀. 모두 얼굴 화장에 한 점 흐트러짐 없다. 곧바로 움직일 듯 생생하면서 한결같이 비현실적이다.

몇 점 없는 아토마우스는 울룩불룩 이지러졌거나 뿌연 담배연기를 피워내고 있다. 이 작가가 걸지 않으려 했던 것을 갤러리가 설득해 추가했다. 명성을 얻게 한 캐릭터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02-2287-35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크릴 화#이동기#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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