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英노동계급 ‘차브’는 왜 ‘혐오 食客’으로 전락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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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오언 존스 지음/이세영, 안병률 옮김/428쪽·1만7500원·북인더갭
“제조업 몰락이 불평등 심화시켜”… 대처리즘-제3의 길 싸잡아 비판
한국에도 양극화 부작용 경종

영국에서 인기 있는 코미디 드라마 ‘리틀 브리튼’은 차브에 대한 전형적 인식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웃음 코드로 삼는다. 드라마 속 비키 폴라드(왼쪽)는 태도가 불량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뚱뚱한 10대 싱글맘으로 대표적 차브 캐릭터 역할을 한다. 사진 출처 구글 검색
영국에서 인기 있는 코미디 드라마 ‘리틀 브리튼’은 차브에 대한 전형적 인식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웃음 코드로 삼는다. 드라마 속 비키 폴라드(왼쪽)는 태도가 불량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뚱뚱한 10대 싱글맘으로 대표적 차브 캐릭터 역할을 한다. 사진 출처 구글 검색
‘차브(Chav)’는 영국의 하층계급을 지칭한다. 영국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또는 영국의 중산층 이상이 생각하는 차브는 대체로 낡은 공영주택에 살며 변변한 직업 없이 정부의 복지예산을 타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이 있다 해도 슈퍼마켓 점원, 콜센터 직원처럼 비숙련 노동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물론 그 자녀들도 폭력적 성향을 띠고 10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흔한 일이다. 일종의 ‘사회적 기생 집단’ ‘폭력과 일탈 집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차브는 피해야 할 존재이자 조롱, 무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영국의 헬스클럽 체인 ‘짐박스’는 ‘차브 파이팅’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폭력적 성향의 ‘차브’와 길거리에 마주쳐도 주눅 들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체력과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여행사 ‘액티버티즈 어브로드’는 여행지에서 차브와 만나지 않도록 일정을 짰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이 같은 ‘차브 혐오’ ‘차브 왕따’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반복 재생산된다. 유명 TV 드라마 ‘리틀 브리튼’에선 야비하고 뚱뚱한 싱글맘으로, 차브스컴 같은 웹사이트에선 짝퉁 브랜드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허영심 많은 캐릭터로 묘사된다.

한때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이란 멋진 의미를 가졌던 차브가 왜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저자는 대처(보수당)와 토니 블레어(신노동당)의 합작품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대처는 ‘영국병’을 고친다는 이유로 탄광 노조를 굴복시키고 산업의 틀을 제조업에서 금융 정보 엔터테인먼트 등 비제조업으로 바꿔 나갔다. 또 국유 기업을 민영화했다. 이 같은 제조업의 폐기는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안정적 소비층이었던 노동계층의 몰락을 의미했다. 1990년대 집권한 신노동당 역시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란 구호로 누구나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하지만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릴 산업이 없어지고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에선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대형 할인마트 판매원, 콜센터 직원, 간병인 등 비정규직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이 바로 차브의 원천이 됐다.

영국 정부는 차브가 복지급여를 부정으로 타내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적발 의지를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장애수당을 받는 사람은 1963년엔 50만 명이었지만 2009년 무려 260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실제 노동 능력이 제한되는 장기 질환자는 17.4%에서 15.5%로 줄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장애수당을 대책 없이 퍼준 것은 바로 정부다. 장애수당 수급자는 1990년대 초반 경기 후퇴의 여파로 가파른 급증세를 보였는데 존 메이어 총리가 물러나기까지 약 80만 명이 늘었다. 이는 정부가 장애수당을 실업자 수치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 부유층의 탈세가 차브의 복지수당 부정수급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 책은 사회 양극화 속에서 몰락한 노동계급의 비극을 수많은 인터뷰와 르포를 통해 보여주며 대처리즘과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올해 30세가 된 젊은 저자는 차브를 구하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정부의 공공주택 건설 등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영국의 심각한 양극화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저자의 해법이나 대안이 우리 실정에도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양극화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대처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진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차브#리틀 브리튼#노동계급#영국병#사회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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