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 닻 내린 지구 정반대편의 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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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를리치 설치작 ‘대척점의 항구’

‘눈속임’ 기법을 즐겨 쓰는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신작 ‘대척점의 항구’. 물 위에 배가 비친 듯한 착시 효과가 즐겁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눈속임’ 기법을 즐겨 쓰는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신작 ‘대척점의 항구’. 물 위에 배가 비친 듯한 착시 효과가 즐겁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도호 작가의 푸른 집 대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가 들어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가장 높은 전시실 ‘서울박스’의 전시물을 지난해 11월 개관 후 처음으로 바꾸었다. 첫 전시작인 서 작가의 ‘집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속의 집’ 대신 들어선 작품은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41)의 ‘대척점의 항구(Port of Reflections)’. 가로세로 각 23m, 높이 17m인 대형 공간에 경쾌한 색감의 배 6척이 따뜻한 가로등 조명을 받으며 조용히 닻을 내린 항구의 모습을 표현한 설치 작품이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지구의 정반대편, 즉 대척점에 위치해 있어요. 두 문화권의 소통을 위해 상호 연결을 상징하는 배와 항구를 끌어들였죠.” 전시를 하루 앞두고 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에를리치는 “후원사가 한진해운이어서 배를 오브제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웃으며 “아니다”라고 했다.

에를리치는 관객들의 착시 현상을 이용한 설치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작품도 배와 가로등이 수면 위에 고스란히 비친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단단하다고 믿는) 현실 자체도 가변적이잖아요. 같은 현실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고요. 관객을 진짜 속일 의도는 없습니다.”

‘대척점의 항구’를 감상하는 지점은 모두 3곳이다. 지상 1층에선 ‘물 위’의 항구가 보인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검은 ‘물 속’에 들어간 듯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배들을 올려다볼 수 있다. 해가 진 다음이라면 전시장 밖에서 유리로 된 서울박스를 들여다보자. 서울 한복판에서 뜬금없어 비현실적인 항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9월 13일까지.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대척점의 항구#레안드로 에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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