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슴이 얼얼해지는 ‘미시시피 버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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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서머, 1964:자유와 평등, 민권운동의 이정표/브루스 왓슨 지음·이수영 옮김/576쪽·삼천리·2만5000원

“60년도 안 되는 세월 전에 아버지는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도 없었겠지만 그 아들은 이제 여러분 앞에 서서 가장 성스러운 선서를 할 수 있습니다.”

2009년 1월 20일, 전 세계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숨을 멈춘 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켜본 미국인 가운데 ‘프리덤 서머’ 프로젝트 참가자 700여 명은 1964년 미시시피에서 보낸 여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이 품었던 희망이 현실이 된 것이다!

‘프리덤 서머’는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버클리대 등에 다니던 대학생 700여 명(대부분 백인이다)이 학생비폭력실천위원회(SNCC), 흑인 민권운동가와 함께 1964년 여름 미시시피에서 흑인을 유권자로 등록시키고 평등과 자유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 프로젝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흑인 인권 운동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프리덤 서머’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왜 미시시피였을까. 1963년 마틴 루서 킹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할 때 미시시피는 남부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주로 꼽혔다. 다른 주의 흑인 투표율은 50%가 넘었지만 미시시피는 7%가 안 됐다. 학교, 식당 등에서 흑백 분리정책이 시행된 것은 물론이고 투표를 하려는 흑인은 처참하게 살해됐다.

‘프리덤 서머’는 목숨을 건 운동이었다. 참가자들은 쿠클럭스클랜(KKK) 등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하지만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다.

‘프리덤 서머’에 뛰어든 청년 세 명이 실종되고 마침내 살해된 것이 확인되면서 ‘프리덤 서머’는 미국 전역을 들끓게 만들었다. 결국 1965년 흑인투표권법이 통과됐고 여섯 달 안에 미시시피 흑인의 60%가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속도감 있는 문장을 읽어 나가다 보면 젊은이의 목숨을 건 도전이 역사를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프리덤 서머’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미시시피 버닝’(1988년)은 살해된 세 명의 활동가를 찾는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인종 갈등의 진통이 여전한 미국에서 ‘프리덤 서머’의 의미는 아직 유효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프리덤 서머#1964:자유와 평등#민권운동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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