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事 통해 성찰의 메시지 전달… 중국 자기계발서 “좋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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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차트 상위 다수 포진
“읽고 나면 남는 것 별로 없더라”… 기존 美-日-국내 처세술 책에 피로감
작년 인문학 서적 열풍과 결합… SNS 짧은글 문화와도 궁합 맞아

중국 명대의 화가 정운봉이 그린 삼교도(三敎圖). 공자, 석가, 노자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최근 이들로 대표되는 중국 사상과 역사를 녹여낸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중국 명대의 화가 정운봉이 그린 삼교도(三敎圖). 공자, 석가, 노자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최근 이들로 대표되는 중국 사상과 역사를 녹여낸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공자가 아끼던 제자 ‘안연’이 사라졌다. 안연은 한참 뒤에 나타났다.

“죽은 줄 알았다.”(공자)

“스승님이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안연)

공자의 말에는 ‘너는 나를 버리고 먼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있고 안연은 스승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답한 것이다. 현대 대화법인 ‘TPO’가 적용된다.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에 따라 적절히 말해야 한다는 이론….

최근 베스트셀러 1위가 된 자기계발서(‘말공부’)의 한 대목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이 책처럼 중국 저자가 직접 쓰거나 중국 고전을 소재로 한 자기계발서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중국 자
기계발서 급부상

동아일보가 4월 둘째, 셋째 주 ‘자기계발·처세’ 부문 베스트셀러를 분석한 결과 중국 관련 자기계발서의 강세가 드러났다. 교보문고에서는 ‘느리게 더 느리게’ ‘말공부’ ‘나를 지켜낸다는 것’이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4, 5, 7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예스24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톱5에는 ‘말공부’가 1위에, ‘나를 지켜낸다는 것’이 5위에 위치했다. 이 책들은 논어, 사기, 십팔지략, 유가경전 같은 중국 고전을 통해 처세술을 알려준다.

판매량도 만만치 않다. 교보문고 진영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중국 자기계발서는 일주일에 약 1000부, 누적 판매량은 2만, 3만 부 정도다”며 “대부분 2월 중순 이후 발간된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늑대의 도 여우의 도 인간의 도’ ‘오자서병법’ 같은 중국 자기계발서가 지난달을 기점으로 앞다퉈 출간되고 있다. 대형 서점에선 중국 자기계발서를 세트로 묶어서 판매하고 있다.

○ 중국 자기계발서 인기 왜?

이런 현상에 대해 출판평론가들은 “기존 자기계발서에 대한 독자들의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자의 피로감이란 무엇일까. 동아일보가 예스24와 함께 2000∼2014년 자기계발 분야의 연간 베스트셀러 1∼10위를 분석해보니 자기계발서는 ‘동기 부여’와 ‘긍정적 사고’를 강조한 미국식→매뉴얼 위주의 일본식→국내 스타 강사 순으로 인기를 얻어 왔다.

자기계발서가 주요 베스트셀러가 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부터. 당시 ‘사오정’ ‘오륙도’란 말이 횡행하면서 ‘남보다 한 발 앞서 가라’는 서구식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선택’ ‘백만불짜리 습관’이 대표적인 예. 2000∼2007년 이와 유사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톱10의 60%가량을 차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서구식 자기계발서 인기가 감소했다. 신자유주의적 서구 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미국식 자기계발서는 사회 모순을 외면하고 개인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탓이다. 2010, 2011년에는 고이케 류노스케의 ‘생각 버리기 연습’과 ‘화내지 않는 연습’ 같은 매뉴얼형의 일본 자기계발서가, 2012, 2013년에는 김난도 김미경 같은 국내 스타 강사를 앞세운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자기계발서들 역시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지적이 많아지면서 지난해 중순부터 인문서적 붐이 일었고, 중국 자기계발서 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출판계의 해석이다. 흐름출판의 김세원 편집장은 “중국 자기계발서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메시지와 성찰을 동시에 전달한다. 인문서적과 자기계발서가 합쳐진 형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짧게 글을 쓰는 문화가 확산된 점도 중국 자기계발서의 인기를 키웠다”며 “스토리텔링을 갖춘 중국 고전만큼 SNS 글쓰기에 적합한 소재는 없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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